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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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

2007-09-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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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한국을 방문 중이던 지난 달,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올림픽 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6년 전 한국에서 1년을 살았을 때 그 공원에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살며 자주 산보를 왔었기 때문에 다시 산보를 하게 되니 특별했던 여러 추억들이 생각났다.
걷다가 남한산성 주변의 산들에 낮게 걸린 구름을 올려다 볼 때도, 강 건너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을 바라보던 때도, 서울에서의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만 같아 항상 아쉬움 속에 정경을 감상했던 기억이 났다. 새 달이 시작되는가 싶으면 어느새 월말이 되는 가운데 떠날 날이 성큼성큼 다가 왔던 것이다.
나무와 조각품들 사이에 난 콘크리트 산보 길로 걸어 들어설 땐 또 다른 기억이 내 귀를 때렸다. 아, 그 지겨웠던 음악.
공원의 관리자가 자연이 너무 조용해서 인공적으로라도 소음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산보 길의 일정한 거리마다 걸린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크게 울려 나왔던 것이다. 감흥을 주지 못하는 영화가 배경음악을 통해서라도 관객에게 언제,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심 공원에 공연히 불필요한 음악을 틀어놓아 스스로 만족치 못함을 알리는 꼴이 되었다.
전엔 모차르트나 바흐를 크게 틀어 놓아서 자연을 즐기려는 무드를 망치곤 했는데 이번엔 취향이 좀 색달랐다. 10년 전쯤 한참 유행했던 라틴 리듬의 팝송 ‘맘보 5번’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 노래를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중간 중간 관현악단의 신나는 연주가 삽입되는 생동감 넘치는 리듬 때문이었다. 가사를 보자면 한 남자가 현재 데이트 중 혹은 잠자리를 같이 하는 수명의 여성들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었지만.
2000년도에 멕시코의 YMCA에 학생들을 인솔해서 간 적이 있다. 그곳 스태프들은 우리 교수들과 학생들이 인근 지역의 페스티벌에서 춤을 추면 좋겠다고 했다. 음악도 이미 정했다며 갖고 온 큰 스피커의 스테레오 시스템 버튼을 눌렀는데 바로 ‘맘보 5번’이었다.
결국 우린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말았다. 그때 학생들 중 몇이 비디오를 찍었는데 그 중 누군가가 YouTube에 그 비디오를 올릴까 봐 노심초사 하는 개인적 사연을 가진 노래인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이 노래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 들었던 때는 이보다 훨씬 더 묘한 상황에서였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 1년 동안 살 당시 아들이 한국 학교의 5, 6학년생이었다. 아직 한국말이 익숙지 않지만 더 가르치고 싶은 바람으로 국제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1년이 끝날 무렵 학교에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공연했다. 나의 아버님과 레이건이 가장 좋아했던 영화여서였는지 개인적으로 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한국 초등학교 학생들의 정성들인 춤과 노래 솜씨는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에델바이스, 수녀들, 나치들 등 모두가 원작 그대로였다.
그러나 연출가는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을 색다르게 이끌어갔다. 그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 노래 대신 ‘맘보 5번’이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해프닝이었다.
한국 방문을 많이 했던 만큼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들도 많은 편이다. 해질 무렵 선운사의 고요한 아름다움. 무더웠던 여름 날 차가웠던 오미자 찻잔에 맺히던 물방울. 기차를 타려고 택시를 탔다가 잘못 들어선 청량리역 뒷골목의 커다란 유리방 속에서 드레스로 단장한 직업여성이 화장을 하던 장면.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부모님들이 객석에 앉아있는 큰 극장의 무대 위에서 20여명의 한국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1930년대의 오스트리아 수녀복을 입고 바람둥이 라틴 남자의 사랑 타령 영어 팝송에 맞춰 신나게 춤추던 장면은 그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게 해괴하고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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