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너의 운명을 읽어라

2007-08-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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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순/ 연방 노동부 선임경제학자

세상은 사라져 가는 구나
자그마한 골목,
너무 좁고,
이미 음침한 그늘 속에 너무 많이 감싸인 골목.

한 마리의 개,
한 외로운 아이만 홀로 있고.
거대한 거울,
옷을 벗은 연인들을 숨겨 두었는데.

어느 누가 그들을
열린 트럭에 가로채 끌고 가누나.
그들은 발가벗기운 채,
소파에 앉아 끌려가고,


태풍이 일고 있는
어느 알지 못할 캐사스나 내브라스카
어두워 가는 광야 위를.
여인이 트럭안에서

붉은 우산을 핀다.
소년과 개가 그들을 쫓고 있다,
모가지가 잘린
닭을 쫓아가듯.

이 시는 8월1일에 미국 국회도서관이 제15대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 발표한 찰스 시미크 (Charles Simic)가 몇년 전에 지은 동명제목의 시이다. 이미 2명이 살해당하였고 아직도 테러단체 탈레반의 손에 붙잡혀 있어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는 피랍 한국 젊은이들의 운명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한국민의 심정을 이 시는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듯하다.
아름답고 환한 세상은 사라져 가고 있고 그늘만이 가득한 좁은 골목같은 세상이 바로 테러와 갈등과 복수가 가득 찬 지금의 지구촌을 암시한다. 그 곳에서 도둑을 지키기 위하여 무력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 한 외로운 아이가 우리의 모습이다.
빛을 반사해 주는 대형 거울과 옷을 벗어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숨어서 빛을 반사해 주고 사랑을 나누어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트럭에 실어 납치해서, 위험을 암시하는 태풍이 일어나고 있는 광야위로 끌어가고 있다. 피를 암시하는 붉은 우산을 펴들은 피랍자를 향하여 이미 목이 잘린 닭을 쫓아가듯 그래도 희망을 안고 트럭을 한 마리의 개와 함께 열심히 따라가는 한 소년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제15대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된 찰스 시미크는 1938년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 15살에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 시인이다. 시카고 대학과 뉴욕 대학에서 수학하고 현재 뉴햄프셔 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지성파 시인이다. 그의 시세계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주로 다루면서, 미국 국회도서관장인 제임스 빌링톤이 묘사한 바와 같이 ‘어두움의 그늘’과 ‘반어적인 유모의 빛’을 동시에 간직한 함축된 시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현 미국의 최고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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