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암보다 무서운 병

2007-07-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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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간호사로 일을 하며 임종을 맞는 환자들을 많이 대한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저주스럽고 두려운 경험으로 인식된다. 인간으로서 가장 힘들고 모진 고통의 순간을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호스피스는 쉬운 직업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적 시간들을 넘어서 심리적 안정을 갖고 주변을 정리하며 평안히 임종을 맞는 환자들을 보면 직업적 보람을 느끼게 된다.
말기 암 환자였던 김 할아버지의 경우가 그렇다. 김 할아버지 역시 처음에는 일반 환자들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상치 않은 상태에서 암과 같이 치유가 어려운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되면 누구나 크게 충격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면 환자들은 보통 다섯 단계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첫째 단계는 죽음에 대한 강한 부정이다. 자신이 병에 걸려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원인을 알수 없는 심한 울분과 분개의 상태이다. 이후 병이 진행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자는 세 번째 단계인 죽음과 타협하는 관계에 이른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찾아드는 것은 심한 우울증의 단계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김 할아버지 역시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으로 지쳐있었고, 자신의 병에 대한 분노와 울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간호사의 도움과 가족들의 면회조차 거부하는 심한 병증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런 김 할아버지에게 호스피스는 반갑지 않은 방문자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간호사의 도움이 더욱 절실한 것이 사실이다. 김 할아버지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는 정기적으로 할아버지를 방문하여 기본적인 통증관리와 함께 무엇보다도 할아버지가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필요한 것들을 제공했다.
그렇게 방문이 계속되던 어느 날 간호사는 “켄터키 치킨을 먹으면 입맛이 좀 돌아올까?” 하고 혼잣말을 하듯 하는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그즈음 할아버지가 전혀 식사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간호사는 할아버지께 치킨을 사다드렸고, 할아버지는 참으로 오랜만에 맛있게 음식을 드실 수가 있었다.
무뚝뚝하게 간호사를 외면하던 할아버지가 그 이후 간호사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는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으며 가족과의 관계도 변하게 되었다. 옆에서 열심히 간호하시는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다른 가족들에게도 노여움이나 서러움이 앞서던 마음보다는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정신적인 안정 속에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고 그런 몇 달 후 가족의 사랑과 이해 속에 할아버지는 임종을 맞았다.
절망과 분노는 환자들에게 암보다 무서운 병일지도 모른다. 절망과 분노를 사랑과 이해로 바꾸어 놓는 일,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능한 한 편안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 그것이 호스피스의 일이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송수미
희망호스피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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