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처럼 사는 은퇴계획
2007-07-18 (수)
은퇴 계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은퇴라고 하면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 이상으로 많은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은퇴 생활을 할 것인지에 따라 살 곳을 정해야 한다. 미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으로 생각해 보았다.
마침 최근 신문에 동남아지역 국가에 많은 은퇴 한인들이 정착하고 있다는 특집이 있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이나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등 심지어는 네팔까지 간 한국인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동남아시아 지역은 한국에서 가까운 거리라서 좋은 조건인 반면 불행히도 그곳을 방문한 어글리 코리언들이 저지르는 부도덕한 행동 때문에 현지인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몇 해 전에도 이런 관심을 가지고 중미의 코스타리카를 다녀왔다. 아내의 친구가 별장을 지어놓고 미국을 왕래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기후, 그리고 순박한 인심에 지금도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중국을 방문하던 길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상하이를 방문했다. 메트로폴리탄인 상하이는 뉴요커에게는 생리적으로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어느 해인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실은 뉴욕타임스 기사가 있었다. 뉴욕에서 간 이민 자들의 거의 전부가 이민생활을 포기하고 1년 안에 도로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기사였다.
그들이 막상 뉴욕을 떠나 생활하게 되자 비로소 세계적 문화의 총 본산인 뉴욕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살았던 뉴요커는 영원히 뉴욕을 떠나서 살 수 없다고 했다. 뉴욕에서 거의 생애를 보내온 나 역시 뉴요커임에 틀림없고 그래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늘 이런 대도시 주변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편리한 문화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의료 문제이다. 정기적으로 의사 검진을 받고 있고 각종의 예방을 위한 약을 처방 받아야 하는데 미국을 떠나면 이런 의료 혜택이 문제가 된다. 이런 의료 서비스가 보장될 수 없다면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을 떠난다는 생각은 일단 접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뉴욕을 떠날 것이 아니라 바깥 활동이 어려운 겨울 동안을 다녀오는 철 새 같은 은퇴 생활이 더 없는 선택이라 생각된다.
어느 곳이나 내가 즐기는 골프나 아웃도어 생활에 적합한 곳을 고르면 될 일이다. 이래서 역시 후보가 될 만한 곳을 생각하던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있다. 십 여 년 전에 친구가 살고 있는 브라질의 ‘쿠리티바(Curitiba)’라는 소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수도 상파울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의 남서쪽에 위치한 그림같이 아름다운 이 소도시는 그 때 연속 두 해에 걸쳐 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힐 만큼 매력이 있는 곳이다. 일년 사시사철 우리의 초여름 같은 따뜻한 날씨에 골프는 거의 무료에 가깝고 이과수 폭포도 이웃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철새 은퇴를 한다면 우선 거추장스러운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중요한 의료문제도 저절로 해결이 된다. 내 생애를 보내온 뉴욕의 문화 혜택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오랜 친구들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바깥 활동이 어려운 겨울 동안에 반대로 여름철이 되는 남반구의 존재는 기막힌 창조주의 디자인이며 우리에게 준 최대의 은총이다.
그래서 금년 겨울에는 철새 은퇴의 첫 후보지로 브라질에서 남반구의 여름을 체험해 볼까 생각 중이다.
박중돈 / 법정통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