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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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무희의 극적인 삶

2007-07-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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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 신경숙 지음

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어떤 작가가 왜 글을 쓰지 않는지 소설가나 작가를 대신해서 추궁당하는 일이 있다. 신경숙씨의 경우 특히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깊은 슬픔』,『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자, 혹은 다가설 수 없는 것들에 다가서고자 하는 소망”을 더듬더듬 겨우 말해 나가는 특유의 문체로 슬프고도 아름답게 형상화하여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신경숙씨는 더 이상 소설 안쓰나요?”라는 정말 곤란한 물음에 ‘글쎄요’라는 애매한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경숙의 소설 <리진>이 6년만에 새로 나왔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은 정말 특이한 소재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구한말 궁중 무희의 신분으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실존의 여인 리진의 극적인 삶이 구한말 조선의 운명과도 같이 비극적 터치로 그려진다. 아기 나인으로 궁에 들어간 리진은 갓 태어난 공주를 잃은 왕비 명성황후의 눈에 띄어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된다.
궁중의 무희로 황후를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궁녀로 아름답게 성장한 리진은 조선의 초대 프랑스 대리공사로 파견된 콜랭 드 플랑시의 사랑을 받게 되고 결국 프랑스로 함께 가게 된다. 총명할 뿐 아니라 아름답고 우아하며 예능적인 재능 또한 뛰어났던 리진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파리 생활을 시작한다. 봉건적 사회에서 노예나 마찬가지였던 신분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리게 된 리진은 곧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주목받으며 모파상을 비롯한 문화 예술계 인물들과 교유한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유산, 고국에 대한 향수, 궁중 악사 강연에 대한 그리움 등이 겹쳐 우울증을 앓게 되고 애정도 예전만 못하게 된다. 결국 조선으로 콜랭과 다시 돌아오게 된 리진은 봉건적 속박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조선의 근대와 부닥치게 된다. 역사와 소설적 상상력이 잘 어우러진 이 한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 신경숙은 한층 원숙해진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형열 / 알라딘 유에스 대표(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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