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의 명예박사학위
2007-06-09 (토)
졸업식의 계절과 함께 짙은 신록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지난달 12일 흑인들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워싱턴의 하워드대학 졸업식에서 이색적인 학위 수여식이 있었다. 토크쇼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가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가 융단 같은 잔디가 깔린 교정에서 검은 학위복 차림으로 연설하는 장면을 CNN-TV가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다른 연사들의 엿가락같이 늘인 연설보다는 그녀의 연설이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그녀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개인적인 체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녀는 비록 작은 지역 방송사이지만 미국 최초의 흑인 앵커우먼이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때 자신은 너무 흑인다웠고(I was too black) 너무 감정적(I was too emotional)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그녀는 구릿빛 피부와 넙적한 코와 두꺼운 입술,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뿌리를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뉴스 리포터로서의 자질로 두각을 나타내기보다는 그녀가 TV 토크쇼 진행자로 발탁되면서 그녀의 눈부신 변신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주위로부터 이름을 미국인다운 느낌의 ‘수지’로 바꾸라고 강요에 가까운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거절하였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신감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민 초기 나의 촌스러운 이름을 미국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던 씁쓸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나의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찍힌 각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연설은 인종차별과 빈곤의 늪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살았던 흑인들의 암흑시대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흑인 배우인 시드니 포에티어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1964년 전까지는 할리웃에서 흑인 배우를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녀의 연설 도중 박수갈채가 여러 차례 터져 나왔다. 그녀의 토크쇼의 진행도 자석과 같은 강한 흡인력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얼마 전 그녀의 쇼에서 2004년 동성연애자임을 고백하고 중도 사퇴했던 제임스 맥그리비 전 뉴저지 주지사의 이혼한 부인이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남편이 호주 출신의 기업가와 동거중이며 동성연애자라는 고백을 했을 때의 절망과 혼란스러움을 고백하였다. 인터뷰가 진행하는 동안 초대석에 앉아있던 여자들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그녀는 토크쇼에서 방청객들과 진한 공감대를 만들어간다.
성폭행, 미혼 임신, 마약에 아무 보호장치 없이 노출되었던 그녀의 성장기는 오히려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불행을 성공으로 역전시킨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녀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밑바닥에서 창공으로 높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가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교정에서 사각모를 쓴 오프라 윈프리는 갈라진 시멘트 바닥 틈 사이를 뚫고 피어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민들레와 같아 보였다.
박민자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