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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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 두 얼굴

2007-06-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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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저녁 인사동에서 한 친구와 만나 추어탕을 먹었다. 식사 후 그는 나를 인사동 골목의 한 건물로 데리고 갔다. 전통 다도(茶道)로 이름난 한 여성의 집이었다. 그녀는 다도문화 보존을 위해 애쓰다 타계한 한 스님의 전통을 이어받아 지리산에 차밭을 가꾸고 있었다. 그는 영국에 사는 친구에게 보낼 차를 사기 위해 들렀는데 최고품에 속하는 그녀의 차는 상당히 비쌌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는 꾸밈없고 단정하게 보이는 40대로 스님들이 입는 가사와 비슷한 모양의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바닥에 손을 대고 절을 했고 그녀는 우리에게 차를 끓여주었다.
그녀는 최근 자신의 차에서 차밭 옆 고속도로의 자동차 매연 냄새가 나서 밭을 옮겼다고 했다. 20여분 얘기를 나눈 후 문을 나서는데 그녀가 친구에게 내가 한국인 아내로부터 ‘교육을 잘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교육을 잘 받았다’니? 이게 웬 말인가? 하긴 한국문화를 접한 지 12년쯤 되다 보니 한국식 친절함, 에티켓, 태도를 나도 모르게 몸에 익히게 된 것 같긴 했다. 절을 하고, 두 손으로 물건을 주고받고, 존댓말을 쓰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진중하고 과묵하게 된 것이다. 기분 상하는 일에도 입 다무는 경우가 많아졌고, 의견이 맞지 않아도 내 주장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인 인간관계에 항상 존재하는 상하의 위치를 잘 감지할 수 있었다.
예전의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미시간에서 솔직담백함을 자랑스러워하는 가족 속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고향이 남쪽인 캐롤라이나여서 우리는 남쪽의 친절함과 북쪽의 직설적 행동 중 어느 쪽이 더 진실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행동인가에 대한 언쟁을 즐기곤 했다. 북쪽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의 친절이 가면적이고 무성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드러내지 못해 끓는 속 감정을 폭력과 불신으로 표현한다고들 얘기한다. 물론 단지 북쪽 사람들의 편견일 뿐이다.
다른 문화를 가깝게 대할 기회가 별로 없는 한국, 미국 친구들은 내가 한국적인 것을 단지 흉내만 내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내가 그렇게 변했는지 묻는다.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영어 표현 중 ‘두 얼굴을 가졌다’는 말은 아주 모멸적인 말이다. 그렇긴 해도 내가 한국인들을 대하며 두 얼굴을 보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몇 년 전 서울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한인 교수가 사무 처리를 상식 밖으로 부당하게 한 적이 있었다. 참다못해 나는 결국 그것을 지적하고 마는 ‘비한국적’인 일을 저질렀다. 얼마 전에 이곳 근처 대학의 한인 교수와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도 그랬다. 이 두 교수들은 너무나 상식적인 내 지적을 들으며 ‘분명히 문화적 차이’라고 투덜거렸다. 이 경우들을 보면 내가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까다로운 미국놈’이기도 하니까.
오래 전 이민 와서 미국식으로 변한 재미 한인들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같은 민족 손님을 대하는 경우, 그 두 한인은 일을 미국식 아닌 한국식으로 처리할까? 물어보니 대개는 그렇지만 일부는 점점 더 미국식으로 처리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끼리는 어떨까?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서 살 동안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에 사는 독일 여자를 만났다. 우리는 한국 문화와 다른 각자 나라의 문화를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중년 한국인들은 친구 사이에 더치페이 하는 것을 너무 개인적이라 여기지만, 그녀와 나는 한 사람이 생색 내지 않으면서 서로를 대우해 주는 푸근하고 다정한 행동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는 우리의 성품이 알게 모르게 한국식으로 변했음을 인정했다. 더 나아가 한국생활을 점점 더 편하게 느끼고 있음도. 우린 그것이 90% 잘된 일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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