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당신 생애는 수필이었습니다”

2007-05-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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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피천득 선생님을 추모하며

피천득 교수님,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었습니다. 삼년만 더 사 시면 일백수를 하실 터인데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서울사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였을 때 피 교수님을 뵙게 된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글 ‘수필’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고등학교때에 모두 암송할 정도로 푹 빠졌었는데 바로 그 분을 뵙게 된 것입니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마치 ‘기미독립선언서’나 ‘주기도문’을 암송하듯이 선생님의 글을 줄줄 외운 것입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에서 교과서에 게재된 선생님의 글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은전 한 닢’, 특히 ‘인연’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려 놓기에 충분한 명문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저의 아내가 영어교육과에 입학하여 대학원까지 6년 동안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지금도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꽃을 자주 피우곤 합니다.
피 교수님, 선생님에게서 영어 배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Untrodden Road),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들을 선생님의 지도로 영어로 읽었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외우는 것 외에 별다른 왕도가 없지요.” 이 한 마디가 저의 가슴에 남아 있어 지금도 열심히 외우며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서 문장도를 배운 것을 평생토록 잊지 못합니다. 외국에 나와 삼십 여년을 살고 있으면서도 모국말로 글을 쓰고 ‘수필가’로도 행세하는 데는 선생님 작품에서 배운 바가 너무 큽니다. 그 깔끔한 간결성, 사람의 정서를 울리는 서정성, 다른 작가에게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독창적 표현, 수필이라지만 한 편의 시를 연상하게 하는 고도의 압축미…. 선생님의 수필과 시는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금강석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서 인생의 여러 교훈을 배운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석입니다. 대학시절 학비를 제대로 벌지 못해 앞이 캄캄하던 때에 선생님 글에서 읽은, “억압의 울분을 풀 길이 없거든/넓은 창공을 바라보라던 그대여…”라는 한문장이 큰 힘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해방의 소식을 듣고 쓰셨다는 ‘파랑새’에서 겨레사랑을 배웠습니다. 최근에는 단아하고 아름답고 소박하게 늙어 가시면서 만년을 즐기시는 모습은 모든 한국인을 선생님의 인생 제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만년’이라는 수필의 마지막 문장은 천만금의 값이 있습니다 .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보기도 한다… 훗 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선생님, 참으로 아름답게 사시다가 고요하게 잠드셨습니다. 한 편의 수필처럼.

이정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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