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디 쓴 우리 사는 이야기
2007-05-12 (토)
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미주 독자라면 이제 최인호, 박완서, 공지영, 이문열, 황석영 뿐 아니라 은희경, 성석제, 김영하, 윤대녕, 전경린, 김형경도 알아야 한다. 특히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성석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성석제의 7개의 소설로 꾸려진 <참말로 좋은 날>은 슬프다. 하지만 가슴을 끓일 만큼 애달프지는 않다. 못난 모습을 비추는 자화상이라고 할까.
소설은 우리네 사는 모습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마치 환자의 폐부를 몇 백 배로 확대해서 보여주는 현미경처럼 그려내고 있다. ‘참말로 좋은 날’이 아니라 ‘참말로 슬픈 날’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 자식, 친구, 형제 등 모두가 도의를 저버렸다. 서로간의 예의는커녕 사랑도 보이지 않는다. ‘우애’,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관계를 맺고 사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성석제가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고귀한 신세’라는 작품은 그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고귀한 신세’의 ‘그’는 고귀하게 산다. 좋은 물 먹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곳만 다닌다. 몸에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안하는, 요즘 유행하는 웰빙 열풍을 이미 이십 년 전부터 실천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할까? 열심히 살아도, 다른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다. 고귀하게 산다 할지라도, 옆에 있던 사람이 사고 치면 함께 피해 받고, 심지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염세적이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많은 이야기가 쓰디쓰다. 하지만 결국 ‘참말로 좋은 날’이 돌아오고 만다.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이 있는 한 결국 ‘참말로 좋은 날’은 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형열(알라딘 유에스 대표)
www.aladdin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