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인 정진남씨 본보 단독 인터뷰
2007-05-06 (일)
“내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6천500만달러 바지 소송에 휘말린 워싱턴의 세탁인 정진남(61)-정수연(56) 부부는 지난 2년 몹쓸 악몽을 꾼 것 같다고 몸서리를 쳤다.
정씨 부부가 황당한 법정 분쟁에 말려든 건 지난 2005년 5월. 정씨 부부가 운영하는 워싱턴 D.C 노스이스트 소재 ‘커스텀(Custom) 세탁소’에 로이 피어슨씨가 찾았다. 가끔 들르던 고객이었지만 그가 직업이 변호사인 줄은 뒤늦게 소송이 진행되면서 알았다.
피어슨씨는 “허리 사이즈를 늘려 달라”며 바지를 맡겼다. 악몽은 며칠 뒤 피어슨씨가 물건을 찾으러 오면서 시작됐다. 그의 바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수연씨는 “그가 처음에는 새로 옷을 사야 한다며 1천800달러를 내놓으라고 했다”며 “영수증을 갖고 오라고 했지만 그는 안 갖고 왔다”고 말했다.
정씨 부부는 바짝 긴장했다. 피어슨씨와의 트러블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2002년경에도 세탁물에 이상이 있다며 트집을 잡아 150달러를 변상한 일이 있었다.
당시 “앞으로 우리 가게로 오지마라”고 이들 부부가 부탁했지만 피어슨씨는 “차가 없다”며 이 세탁소를 계속 들렀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지난 5년간 그가 맡긴 세탁물 비용은 700달러를 조금 넘겼다.
정진남 씨는 “가게 문을 열고 5년간 그가 한번도 웃는 걸 본적이 없었다”며 “그때 이후 그가 오면 항상 조심했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고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문제의 바지가 일주일도 안돼 발견됐다.
정씨는 “피어슨씨가 갖고 있는 영수증과 옷에 붙어있는 테그 넘버가 같은데 그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겼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처음에는 귀찮아 돈 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를 계속 하니 응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와 실랑이를 하던 피어슨씨는 영어 소통이 원활한 이 부부의 아들과의 대화를 요구했다. 당시 정씨 부부의 74년, 78년생 두 아들은 짬이 나면 가게 일을 돕고 있었다.
피어슨씨는 이 부부의 아들에게 5만달러를 변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 소송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정진남씨는 “내가 영수증을 갖고 오라 하니까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한마디로 괘씸죄에 걸렸다”고 씁쓸해 했다.
정씨 부부도 변호사를 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난생 처음 변호사를 만나봤습니다. 한인 변호사들은 바지 사건이 하찮다고 생각했는지 모두 기피했습니다. 어떻게 하다 한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일이 진척이 잘 안돼 나중에는 미국인 변호사로 교체했습니다.”
단 10달러 50센트 밖에 들지 않는 바지 수선비용은 실랑이를 거치며 무려 6천500만달러로 부풀려졌다. 사업체의 부당한 처우 1건에 하루 최고 1천500달러를 요구할 수 있는 워싱턴 D.C.의 소비자 보호법을 적용한 것이다.
정씨에 소송은 난생 처음이었다. 상대는 변호사였다. 그는 매일같이 정씨 가게로 메일을 보내 사람을 질리게 했다. 숨 막히는 날들이 계속됐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가까운 지인들에 6천500만달러 소송을 당했다고 털어놓으니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보도가 나기 전에는.”
정씨는 “어떤 날은 다 집어치우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 도미한 지 15년.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귀가하며 일군 사업체였다. 정씨 부부가 이 동네에 세탁소를 차린 것은 2000년 1월. 픽업 스토어를 운영하다 돈을 모아 새로 매입한 것이었다. 공장을 겸한 세탁소는 흑인촌에 위치했지만 고객들 대부분이 공무원이라 별탈없이 잘 운영돼 왔다. 그러나 그가 D.C. 컨벤션센터 인근에서 따로 운영해온 픽업스토어에서는 험한 일도 겪었다. 지난해 10월 이 픽업 스토어에 강도가 들어 일하던 여 종업원을 망치로 머리를 내려친 사건이 있었다.
이 황당한 바지 사건이 워싱턴포스트지에 보도되면서 정씨 부부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미 주요 언론은 물론이고 영국 BBC에 프랑스 방송 취재진까지 그의 가게를 찾고 있다. 주민들은 꽃을 들고와 이들 부부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정씨 부부를 돕자는 취지로 인터넷 펀드도 만들어졌다. 이는 곧 비영리단체로 넘겨 운영될 계획이다.
“어떤 단골손님은 비행기 타고 장거리 출장 중인데도 전화를 걸어와 힘내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하루 수십통 전화를 걸어 위로를 건넬 때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따뜻한 격려 속에 이들 부부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세탁소도 전처럼 활기차게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는 6월11,12일 예정된 재판일을 기다리고 있다.
정진남씨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당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용기가 필요함을 미국생활을 하며 배웠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종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