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식에게 할 얘기? 못할 얘기?

2007-04-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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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학년 말에 접어 들면서 요즈음 교내엔 온갖 행사가 한창이다. 우등생들의 졸업 논문 발표회 프로그램을 읽다 보니 “경”의 어린시절에 관한 논문이 눈을 끌었다. 아무래도 한국인 같아 호기심이 생겨 가보기로 했다.
스물둘 남짓 해보이는 여학생 앞엔 청중이 몇 되지 않았지만 그 중엔 총장의 얼굴도 눈에 띄였다. 그녀의 논문은 한국인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1960년 한국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의 어머니는 할아버지와 생활 방식이 맞지 않아 세 번의 가출 시도 끝에 집을 완전히 나왔다. 그후 미군 청년을 만나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고 그 아이가 우리 학교의 우등생이 된 것이었다.
그리 특별한 얘기가 아니었지만 우리는 좀더 자세하고 흥미있는 얘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이를 알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머니가 과거 삶의 어떤 부분에 대해선 말하기를 상당히 꺼려하고 있고 심지어 창피해 한다는 것이었다. 딸에게도 말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청중에게 절대 얘기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 들은 얘기는 있지만 말할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 일은 우리의 자전적 얘기를 자식들에게 전할 때 어디쯤에 선을 긋고 얘기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이 일은 또 일제시대 때 한국인 위안부였던 분들을 생각나게 했다. 강제로 만들어진 삶이었만 자식들에게 얘기할 때 무엇을 얼마만큼 전할 것인가에 무척이나 고심하셨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만큼 고심하지 않았나 싶다.
그녀가 보여준 슬라이드 중엔 미군과 한국인 여자가 공원에서 나란히 서서 찍은 빛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이 있었다. 문화적으로 보았을 때 쉽게 지나 갈 사진이 아니다.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냉담 아니면 호감을 표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사진이다. 냉담한 쪽에선 외국인 군인과 교육 받지 못한 여자의 관계가 갖는 힘의 불균형을 지적한다. 또 남자, 여자 양쪽이 각각의 문화를 수준 있게 대표해서 만난 관계가 아니라는(불공평하지만) 지적도 한다. 하지만 호감을 표하는 쪽에선 선남, 선녀가 문화의 큰 차이를 넘는 어려운 고비를 겪으면서도 사랑을 이뤄낸다는 상황을 이해해 준다.
어머니로부터 한국말을 배웠냐고 물었더니 학생은 그렇지 않다며 욕 몇 마디 밖에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가 영어로 얘기를 하는 것을 몇 시간 동안 녹음했다는데, 만약 한국말로 얘기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영어로 말할 때와는 또 다른 것들이 기억나진 않았을까? 딸이 한국말을 배웠더라면 모녀의 관계가 지금보다 더 가깝진 않았을까?
학생의 얘기들 중엔 말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가 엄마 형제들에게 모두 ‘경’이라고 똑같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애경, 은경 처럼 이름 끝자가 같았다는 얘기였을 것이지만,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창피하다는 느낌이 그러는 것처럼 언어의 차이가 모녀 사이를 크게 벌려 놓고 있었다.
필자의 이모할머니는 1998년에 돌아 가셨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남북전쟁 참전군인으로 전쟁터에서 북캐롤라이나의 집으로 걸어 오셨던 얘기를 (유명소설, 영화인 추운 산(Cold Mountain)의 얘기와 비슷한) 많이 들으셨다며 자손에게 자주 상세하게 얘기 하시는 가운데 그분의 삶을 전해주셨다. 어머니는 경제공황 속에 자랐던 자전적 경험을 기록한 300 페이지 정도의 글을 우리 형제에게 주셨다. 우리 부부는 가끔 외아들을 쳐다보며 이 아이는 어떤 식으로 우리의 얘기를 손자들에게 전할까 궁금해 한다.
우리집 장 속엔 내가 오랫동안 써 왔던 영어 일기장과 아내가 썼던 10여 권의 한국어 일기장이 있다. 언젠가 아이가 아내의 일기장도 쉽게 읽을 날이 오기를 바라지만, 글세, 우리 일기장에 관심 갖는 날이 오기는 할까? 참, 죽기 전에 그 중 몇 장은 찢어 내야 하는 게 아닐까?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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