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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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의 스트레스

2007-04-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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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텍 총기사건이 나던 날 낮, 아시안이 총격자라는 방송을 듣고 나도 아시안의 하나라 죄인이 된 듯 고개 들고 다니기가 어려웠다. 저녁엔 범인이 중국 유학생이라 해서 마음 한 구석으로 “그래도 한국인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낮 타이어 가게에서 특별뉴스를 보았는데 한인학생이란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아무도 내가 한인임을 모르기를 바라면서.
사건이 나던 날 저녁이었다. 수업 전에 한 학생이 찾아왔다. 친구가 자살해서 그 충격으로 지난 몇주동안 결석하고 숙제도 못 냈는데 F를 면할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F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대답이었다. 수업을 마친 후 집에 가려고 보니 내 차 바퀴 하나가 펑크 나 있었다. 물론 아니었지만 식구들은 혹 그 학생 짓이 아니냐며 농담을 했다.
자유분방하면서 낭만적으로 보이는 미국 대학은 실제로는 한국 대학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포화상태인 곳이다. 교수 입장에선, 커닝하다 걸린 학생, 성적 불만인 학생 등으로 부터 눈길을 받을 때 언뜻 십여 년 전 모 대학에서 한 교수가 학생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생각이 나긴 해도 사실 그런 일은 거의 없으니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
하지만 청소년도 아니고 완전한 성인도 아닌 이유만으로 이미 스트레스를 지닌 학생들의 입장에선 수만 명의 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어울리기도 하고 경쟁도 해야 하는 큰 스트레스가 있다. 본국인들이 그러하니 유학생들은 오죽할까?
유학을 떠날 때였다. 어머님이 정말 자신 있냐고 몇 번을 물으셨다. 유학 온 후에도 자주 전화하시면서 안부를 물으셨다. 떠나기 몇 달 전 여동생의 친한 친구가 미국유학을 떠났다가 1년여 만에 정신병원에 가게 되어 가족이 한국에 데리고 왔던 것이다.
학교에 도착한 1년 쯤 후 우연하게 그 비슷한 일을 보게 되었다. 그 학교엔 당시 70-80명의 한국유학생이 있었는데 그 중 아주 예의바르고 얌전했던 남학생에게 생긴 일이었다. 그는 공부 따라가기가 힘들 던 중 같은 교회에 다니던 이민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있다가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여학생 집에 자신을 배신했다며 욕하는 괴전화를 매일 걸기 시작했다.
행동이 점점 거칠어졌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같이 살던 한인 학생이 겁에 질려 남의 집으로 피신 갈 정도였다. 그는 어느날 밤 주먹으로 아파트 벽에 큰 구멍을 낸 다음 나가 버린 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짐을 그대로 둔 채. 아무도 그 이후에 그를 본 사람이 없다.
도착 첫 학기 같은 반에 한국 유학생이 있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그 무뚝뚝한 남학생은 항상 비뚤어지게 말을 해서 거리를 두고 지냈다. 어느날 손이 크게 베어 학교에 왔길래 교수를 통해 병원에 가게 했더니 별것도 아닌데 시간을 축내게 했다며 화를 냈다.
후에 들으니 그는 쌍둥이 형과 같은 전공을 했는데 특출하게 잘하는 형과 너무 비교되자 집에서 유학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 후 2년여를 계속 힘들게 공부하던 그는 한밤중에 다른 유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누구를 죽이기 위해 도끼를 사러 가야 하는 데 차가 없으니 데리고 가달라는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다른 이상한 행동들을 보이자 그 전 해에 사라졌던 학생의 집에 미리 연락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던 유학생회가 집에 연락하여 데려 가게 했다.
한 여자 유학생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따라 갈 수가 없자 스스로 짐을 싸 한국으로 돌아갔다. 당시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유학생들이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느니 차라리 정신병원에 가는 일이 덜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여학생의 현명함, 성숙함, 용기를 무척이나 존경했다. 2년 후쯤 그녀는 다시 유학생으로 돌아왔다.
더더욱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곧 그곳을 떠나서 결국 학위를 마쳤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녀는 아직도 내게 가장 멋있는 유학생으로 남아 있다.

김보경 북켄터키 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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