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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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과 세계화

2007-04-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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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 출장길에 드디어 찜질방이란 곳에 가보게 되었다. 지난 수년간 여러 사람들로부터 유혹이 있었건만, 어쩐지 찜질방이란 단어를 들으면 만두 찜통이 연상되고, 불가마란 소리에는 옥황상제가 떠올라 선뜻 가보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뭐든 한번은 해본다는 평소의 신조를 떠올리며 못 이기는 척 초대에 응했었다.
여성전용이라는 곳엘 갔는데, 아주 고급스런 실내 분위기에 돌, 약초 등 다양한 제목을 내세운 뜨끈뜨끈한 방들이 여러 개 있었고 그 안에 들어가 살며시 누우면 등바닥이 덥혀지면서 기분 좋게 졸음이 살살 오는 것을 즐기며 얼마간 머무는 새에 땀이 쫙 빠지고 나면 기분이 상쾌한 듯 느껴졌다.
그 며칠 후 중국 심양으로의 출장은 수십 년만의 폭설로 비행장이 문을 닫는 통에 북경에서 밤기차를 이용, 9시간을 달려 아침 7시에 도착하는 좀 불편한 스케줄을 감수하게 되었었다. 고로 마중 나오신 분이 찜질방에 가서 좀 쉬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하자 나는 선뜻 동의했고, 심양 시내 한국인 밀집지 ‘서탑’에 있는 한 찜질방엘 가게 되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그 곳의 이용객들은 적어도 절반이 중국인들로 보였다. 남녀 한 쌍이 각각의 탈의실로 들어가서 찜질방에서 주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동굴 같은 방에서 다시 만나 느긋이 방바닥에 누워 담소를 나누기도 했고, 여성 친구들 두셋이 함께 와 뭐라고 계속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첨벙첨벙 욕탕 속에 드나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두 나라를 돌며 찜질방에 익숙해진 나는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기 전 서울의 마지막 밤을 찜질방에서 보내고야 말았다. 나를 초대해 주신 분들의 바쁜 스케줄과 나의 빡빡한 스케줄을 맞추다 보니 밤 열시반이 되어서야 찜질방에 갈 수 있었는데, 그분들의 배려로 두 시간 동안 머리에서 발끝까지 마사지를 받고 나니 이미 새벽 한시가 가까웠다.
이곳은 옥돌 불가마를 특색으로 내세웠는데, 스테디엄 같이 생긴 넓은 방에 들어서면 나무로 된 평상과 벤치들로 채워져 있어 앉거나 누워서 찜질을 하게 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땀을 한번 쭉 빼고 나니 노곤해진 몸은 움직이고자 하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말로만 듣던 찜질방 휴게실에서의 숙면을 경험하게 되었다. 온돌처럼 따스한 대청마루에 남녀가 섞여 누워 각자 편한 자세로 잠에 빠졌는데, 나도 거기에 끼어들어 한두 시간 자다 문득 깨어보니 드넓은 휴게실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누워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마치 남녀 공학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오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 시간에 찜질방으로 돌리게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와 사연이 있으려니 하면서 한편으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맘 놓고 코를 골거나 배를 드러내고 잠든 사람들의 광경을 그대로 미국 어느 대도시로 옮겨 상상해 보았다.
육체 건강을 위해 찜질을 하면서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공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묘미는 말로만 들으면 생소해도 행동으로 옮겨보면 웬만한 사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분명 있는 것 같다.
찜질방도 그렇지만 한국의 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 바람도 결국 유니버설한 어필이 내포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인간이기에 느끼는 모든 감정과 요구를 이해해 주고 감싸주고 충족시켜 주는 그 무엇이 있다면 환영을 받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이 글로발리제이션의 긍정적 발전에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는 것 같다.

김유경 Whole Wide Worl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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