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비경 대장정 22일
나는 미국생활 22년 동안 캐나다를 거쳐 알래스카를 자동차로 두 번 그리고 대륙횡단은 여섯 번(그중 두 번은 Greyhound Bus로) 하였는데 가장 인상적인 길은 역시 때 묻지 않은 숲과 흘러가는 흰 구름이 거울에 비치는 것 같은 맑은 호수를 끼고 달리고 또 달려도 끝이 안 보이는 알래스카 하이웨이였다. 그래서 “I DROVE THE ALASKA HIGHWAY”라고 쓰인 스티커를 앵커리지에서 하나 사서 지금도 내 차에 붙이고 다닌다. 비록 나의 조국이지만 좁고 답답한 땅을 떠나 이토록 광활하고 복 받은 미국 땅에 와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끝없이 달려야 하는 알래스카 하이웨이의 기념 스티커>
달려도 끝이 없는 하이웨이
8월에도 눈녹은 진흙길 나무깔아 인도로
개썰매 명성, 화이트호스엔 사람냄새가
좋은 음식 사먹고 호텔에서 쉬면서 하는 편안한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의 나는 네 번의 대륙횡단 때도 그랬지만 두 번에 걸친 알래스카 여행에서도 침실은 밴의 뒤 의자를 접고 그 위에 두꺼운 이불과 담요를 깔아서 만들고 휴식처(rest area)에서는 밤새도록 시동을 끄지 않는 냉동트럭의 엔진소리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어서 캠핑 그라운드에서 단잠을 자면서 여행을 했다. 대륙을 횡단하거나 먼 길을 차로 여행을 하면서 가장 안전한 휴식처는 역시 캠핑 그라운드이다. 노인증(golden age passport)을 가진 사람에게는 6달러에 하룻밤 체류가 허용된다. 그리고 이 카드만 있으면 모든 국립공원의 입장이 무료인데 이 카드는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이나 매표소에서 신청만 하면 62세 이상 된 사람에게 발급된다.
미국의 모든 길이 끝나는 곳이라는 북극해 프루도베이와 데드호스로 가는 댈튼 프리웨이는 대부분이 돌멩이와 진흙으로 뒤엉켜져서 운전하기가 정말 힘든 길이었지만 그러나 그 곳에 가면서 오면서 거쳤던 캐나다와 알래스카의 여러 지역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동화처럼 신기한 곳이 너무나 많았다.
<알래스카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통과하는 도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캐나다 유콘의 주수도 화이트호스. 세계적인 개썰매 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LA에서 캐나다를 거쳐서 알래스카를 육로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통과하는 도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겨울철에 세계적인 개썰매 대회가 열리는 캐나다 유콘의 주수도 화이트호스(Whitehorse)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멀고 외로운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혼자 운전하다 이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에 들어서면 코끝에 그리운 사람냄새와 음식냄새가 와 닿는 것 같은 느낌에 그동안 쌓였던 외로움이 바람에 밀려 먼 하늘로 흘러가 버리는 뜬구름처럼 가슴속에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알래스카는 6, 7, 8월이 여행의 적기여서 이 3개월 동안 미국은 물론 세계 각처에서 여행객이 몰려온다. 따라서 멀고 조용하니 인심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알래스카를 찾는 사람은 실망하기가 쉬우며 기후와 지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떠나야만 즐거운 여행을 마칠 수 있다.
캐나다와 미국 국경을 넘어 알래스카에 들어서면 우선 2번 고속도로를 타고 페어뱅스를 거쳐 북극해에 가지만 돌아올 때는 페어뱅스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3번 고속도를 통해 앵커리지로 내려오는데 그 중간에 있는 유명한 데날리 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에 들러 하루를 관광하고 앵커리지에 내려와서 그 곳에서 약 1시간40분 남쪽으로 달리면 키나이 반도(Kenai Peninsul)의 북동쪽 연안에 위치한 미국 시인 존 그린리프 위티어(John Greenleaf Whittier)의 이름을 딴 항구 위티어(Whittier)에 도착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이토록 좁은 항구를 건설하기 위하여 미국인들은 거대한 암석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었고 크루즈 여행을 즐기기 위해 이 항구를 찾는 모든 여행객은 이 터널을 30분을 달려 통과해야만 위티어에 갈 수 있다. 나는 이곳 항구에서 프린스 윌리엄 사운즈(Prince William Sounds) 호를 타고 은빛 찬란한 태고의 빙하를 만나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먼 남쪽 남가주 하늘 밑 로즈미드 시티에 있는 나의 집을 향하여 자동차의 핸들을 다시 잡았더니 멀고 긴 여행에 지친 탓인지 LA까지 갈 길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생전에 언제 다시 이곳을 찾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 이번이 이 길을 달리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좀 멀지만 돌아갈 때는 유콘 강을 바지선(barge)으로 건너야만 갈 수 있는 도슨시티(Dawson City)를 거쳐 화이트호스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한적하고 외로운 5번 길을 네 시간 달려 치킨(Chicken)에 도착하여 6달러 내고 캠핑 그라운드에서 알래스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을 달려 캐나다의 국경 검문소에 도착하니 5분 후에야 이민국 직원이 창문을 열고 패스포트를 보자고도 않으면서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던지고 문을 닫아버렸다.
유콘강을 바지선으로 차와 같이 건너서 도착한 도슨 시는 8월인데도 지난 겨울 영하 50도를 밑도는 추위에 얼었다가 지금은 녹아있는 진흙 길이 인상적이었고 사람들은 아스팔트 대신 나무로 깔아놓은 인도를 따라 왕래하고 있었다. 시내를 돌아보면서 이곳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이토록 외딴 곳에서 살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는데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밝고 행복해 보였다. 나는 혹시나 이곳에도 한국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전화번호부를 몇 번이고 뒤져 봤지만 눈을 씻고 봐도 한국 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
캐나다를 통과하여 알래스카를 다녀오는 길가에서는 차가 지나가도 곁눈질도 안하는 수많은 동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에는 우리 동네에 왔으면 크랙션을 눌러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우리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 달라는 듯한 여유만만한 표정이 카메라에 뭔가 하나라도 더 담아가려던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이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 야생동물만이 우글거리는 숲 속에서 집에서 키우다 버려진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 개 한 마리가 뛰어나와 내 옆에 와서 반갑게 꼬리를 흔들지 않는가? 그런데 자세히 쳐다보니 며칠을 굶었는지 뱃가죽이 붙어있었다. 너무나 불쌍해서 아이스박스에서 가지고온 햄을 꺼내서 주니까 정신없이 받아먹는다. 나는 왼 손으로는 먹을 것을 주면서 오른손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나는 지금도 백미러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내 차를 바라보고 서있던 그 견공이 눈에 선하다. 혹한과 맹수들 사이에서 무사한지 아니면 옛 주인과 기적적인 상봉이 이뤄져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숲에서 만난 개가 정신없이 햄을 받아먹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음 날도 차를 계속해서 남쪽으로 몰아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캐나디언 로키를 뚫고 달려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워터슨 레이크(Waterton Lakes) 국립공원을 지난 지 한 시간만에 국경을 넘어 미국 땅에 들어서서 ‘Welcome to Montana’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푯말 옆에 차를 세우고서 22일 동안의 길고 먼 여행길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끝>
알래스카 여행기 문의전화 (626)824-5956
이메일 Baekseok2@hanmail.net
글·사진 : 이후택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