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07-03-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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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켄터키 히스패닉 커뮤니티 센터를 가는 길에 네팔 유학생 놀키를 픽업하기로 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 앞에 차를 세우며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생각했다. 그녀도 차를 타면서 앨리스가 토끼 굴에 빠져 들어 가는 순간처럼 느꼈을까?
놀키는 히말라야 근처에서 자랐다. 우리 학교 1만4,000명 중 몇 안 되는 네팔 유학생 가운데서도 유일한 셀파족(에베레스트 등반대 가이드로 유명)이다. 커뮤니티 센터로 가는 동안 그녀는 할아버지가 여름이면 야크를 끌고 북 네팔의 산기슭 방목지로 떠난다는 얘기를 했다.
야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는 치즈를 만들기 위해 야크를 키우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지 않다며 아버지가 그곳 치즈 회사에 납품하는 것보다 직접 버터를 만들어서 팔기를 고집한다고 했다.
놀키는 작년에 우리 학교 전산과에 입학하면서 북 켄터키로 왔다. 가족 중 첫 유학생인데 최근 네팔의 정치상황이 좋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과학재단(NSF)이 지원하는 내 프로젝트의 조교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히스패닉 이민 가정의 저학년 학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컴퓨터의 조립법과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특히 과학 분야를 어렵게 생각하는 여중생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커뮤니티 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빌딩 안으로 들어가니 일요일 미사가 막 끝나고 있었다. 스페인어를 하는 많은 가족들이 값싼 콜라와 엔칠라다, 타말리 등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놀키는 레이나네 가족이 앉은 테이블로 갔다. 레이나는 15살 여중생으로 6주째 접어드는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컴퓨터 조립법을 배웠고 윈도우스 설치법도 배웠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컴퓨터는 학생들의 소유가 된다. 참여 가족들이 대개 멕시코, 엘살바도르, 도미니칸 공화국 사람들로 빈곤층이어서 교실 분위기는 그 사실만으로도 항상 흥분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과학재단의 많은 활동 중 ‘전산 참여 확산’ 프로그램의 하나다. 해보지도 않고 막연하게 공포심만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프로그래밍의 힘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이중언어 커뮤니티가 이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참여 확산에 애쓰는 학자들의 전산학 ‘선교’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학생들은 오늘 스스로 조립한 컴퓨터로 프로그램하는 법을 배운다.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만든 ‘앨리스’라는 프로그램어를 사용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이름인데, 작가 루이스 캐롤은 논리와 상상력이 훌륭하게 어우러진 글을 쓰는 작가로 특히 수학자와 전산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프로그램어는 입체영상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초보자가 아주 쉽게 배울 수 있게 만들어졌다(www.alice.org 에서 무료 다운로드 가능). 이 프로그램으로 오늘 학생들은 작은 세상을 하나 창조한다. 소, 닭, 로봇, 사무라이, 야자수가 있는 작은 농장이다.
불안정한 정부와 모택동 지지자들 간의 싸움 때문에 모국의 미래가 아주 불안한 지금, 놀키는 모국어는 스페인어지만 켄터키 사투리 섞인 영어를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스페인어 통역자가 있고 강사가 스페인어를 하려 해도 그들은 컴퓨터 용어만큼은 영어로 배울 것을 고집한다.
놀키 옆에서 레이나는 자신의 작은 세상에 부채를 든 일본인을 그려 놓고 ‘앨리스’로 춤을 추게 한다. 춤꾼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을 한바퀴 돌자 놀키가 크게 웃는다.
이 모두가 마술과 같다. 어찌 보면 유학생 놀키도 앨리스이고 이민가정 학생 레이나도 앨리스이다. 사실은 이민자 모두가 앨리스로, 미국이란 실제 세상과 나름대로의 논리와 꿈이 마술적으로 존재하는 ‘이상한 나라’에 동시에 속해 살아왔다. 그리고 그 ‘이상한 나라’는 더 이상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이민자에게만 속한 곳이 아닌 큰 세상이 되어져 있다. 누구든 앨리스가 되어 함께 만날 수 있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내는 곳이 된 것이다.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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