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굴 밖의 남자

2007-03-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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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은 왜 일터에선 그렇게 많은 정열과 시간을 쏟으면서 아내에겐 소홀한 것일까. 남자들은 직장에선 끊임없이 대화한다. 이메일로, 메모로, 전화로, 회의로 종일 소통해도 부족하다. 혹시 서로의 의중을 잘못 읽을까 봐 거듭거듭 확인한다. 표정 뒤에 숨은 상대의 진의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집에 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남자는 직장에선 문제의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안을 만들고 그것도 미심쩍어 차선책과 비상책까지 챙긴다. 그러나 집에 오면 사소한 문제도 귀찮아한다. 아내와 대화로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고집만 부리다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왜 그럴까? 남편들이 일에 쏟는 열정의 반만이라도 집에 쏟는다면 부부갈등은 없어질 거라는 아내들의 투정이 일리가 있다. 데이빗 진잰코라는 사회학자는 그 원인을 남성들의 성취 지향적 속성에서 찾는다. 쉽게 말해 인정 욕구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의 최고 가치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37%)으로 나타났다. 승진과 봉급 인상이 건강관리(29%)나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11%) 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일단 손안에 든 새는 당연히 여긴다. 여인에게 구애할 땐 뭇 수단을 다 쓰지만 일단 내 사람이 되면 다음 목표로 나아간다. 이는 남성들의 종족 번식의 본능이며 동굴시대부터 입력된 ‘계단식 사고’란 것이다. 그런데 직장은 살벌한 전쟁터다. 살아남아야만 하는 정글이다. 거기서 인정받는 영웅이 되려는 욕구가 크다. 그러나 집은 텅 빈 벤치처럼 무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다. 직장이 이젠 더 이상 남성 전유물이 아니다. 전문직 여성 진출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사회구조는 남녀간 평등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 직장만 해도 전에는 엔지니어링 분야에 90%가 남자였다. 그런데 요즘 거의 반이 여성들이다. 의대나 법대에는 여자들이 더 많다. 그리고 이들 여성들의 능력이나 잠재력이 남자들 못지않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미래의 산업구조는 여성들에게 더 적합할 것으로 예견한다. 이유는 여성들의 뇌가 ‘거미집 사고’를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서로 연관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구조다. 끝도 없는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생긴 능력이다. 남성들처럼 한 가지 일을 해결한 뒤 다음 단계로 나가는 계단식 사고보다 복잡한 사회에선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들은 환경적응력도 뛰어나다. 감정조절을 다스리는 우측 뇌가 더 발달돼 위기 극복도 잘한다. 남자들은 난관이 오면 존 그레이가 ‘화성 남자’에서 말했듯이 홀로 동굴 속에 들어가 끙끙대지 않는가. 그러나 여자들은 대화와 적절한 감정표현으로 대응한다.
이젠 남자들이 동굴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할 수밖에 없다. 우선 남녀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게 급선무다. 남성들은 여자들의 키워드가 ‘관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관심은 대화다. 남자완 다르다. 남자들은 ‘난 당신을 믿어요’하는 ‘믿음’ 하나로 끝나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관심 있게 들어주길 원한다. 막연히 믿어만 주면 되겠지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직장에서 이메일 하듯 아내와 열심히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집안 문제가 생기면 직장에서 회의하듯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손안에 든 아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꺼진 불 다시 보듯, 자는 아내도 다시 봐야 한다. 그래야 동굴 밖, 우리 남자들이 살아남는다.

<김희봉>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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