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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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서 만나는 윤동주

2007-02-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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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의 달력을 2월로 넘기며 2월의 메모를 적어 본다. 설날이 있고 친구의 생일이 있고 등등. 그러다 문득 해마다 2월이면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행사가 최근 몇 년간 열렸던 생각이 떠올랐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보는 서정시인 윤동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기를 원했던 영혼이 맑은 시인 윤동주, 일제의 질곡에 저항하고 절규했던 애국 시인 윤동주, 시나 문학에 문외한이라도 ‘서시’의 시인 윤동주 이름 석자를 모를 이는 없으리라.
그는 1945년 2월16일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이름 모를 약물주사로 마지막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6개월만 더 견뎠더라면 그토록 애타게 갈망하던 조국의 해방을 보았을 터인데…
일제하에 내 나라를 잃고 떠들던 북간도도 아니고 해방 된지 60여년이 지난 오늘 나는 미국 땅 캘리포니아에서 유민 아닌 교민으로 살면서 윤동주 시인을 생각해 본다. 지금 내가 캘리포니아 밤하늘에서 보는 별이나 윤동주 시인이 보았던 별들은 다 같은 별이지만 맑고 찬란한 그 별빛이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면서 그에게는 설움과 한의 빛으로 나에게는 행복과 희망의 빛으로 빗겨가는 것 같다.
시인도 아니고 문학을 하는 사람도 아닌 나는 이제 감정도 메말라 가는 60 중반의 할머니. 그 옛날 문학소녀를 꿈꾸던 시절 그의 시를 읽으며 가슴앓이를 할 정도로 풍부하던 감성이 아주 메말라 버린 줄 알았는데 몇 년 전, 윤동주 시인의 서거 60주년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여 그의 시를 다시 대하면서 그 감성이 다시 부활하게 될 줄이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려는 시인의 깨끗한 마음이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에서 더욱 더 보석처럼 빛난다. 우리는 지금 한 점 부끄러움이 아니라 온통 부끄러움으로 얼룩진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 추운 겨울, 마음이 더 추웠던 이국땅, 치를 떨게 하는 일본의 감옥에서 고국 하늘의 별빛을 보며 잃어버린 내 나라 내 겨레를 가슴에 새겼던 시인의 조국애를 생각해 본다. 비록 그의 육체는 일본이 죽였을지언정 위대하고 깨끗한 영혼, 순결한 마음, 애국심까지 죽이지는 못했으리라, 27년 하고 한 달, 짧으나 값진 인생을 살다간 그는 영원한 승리자, 우리 겨레에게 위대한 영혼을 남겼다.
윤동주 시인의 맑은 혼, 조국사랑의 혼은 고국에서는 물론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사는 우리와 우리의 후세들 가슴속에 시공을 넘어 영원히 살리라. 만약 윤동주 시인이 이 시대에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다면 어떤 시를 썼을까?
캘리포니아의 별도 사랑 했으리라. 멀리 조국을 떠난 우리들이 맑고 밝게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기를 바랐으리라, 그리고 갈라진 내 나라가 하나가 되고 번영하기를 바랐으리라. 윤동주의 혼은 캘리포니아에서 그렇게 부활했으리라 생각한다.
올해에도 추모 행사가 2월17일 밤 피라미드 레이크 RV 팍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날 밤 나는 또다시 캘리포니아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을 우러르며 윤동주의 시구 한 구절을 읊조리는 행복한 순간을 맛보리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배광자> 글렌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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