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렌타인스 데이 단상

2007-02-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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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열정은 어느 면에서는 동질어로 볼 수 있다.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면 열정이 피어난다. 열정이 피어나면 사랑은 무르익어간다. 사랑이 무르익어가다 보면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하여 살다보면 처음 사랑할 때의 열정은 어디로 갔는지 점점 사라진다. 그저 삶에 허덕이면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친 지친 상태의 부부가 되기 십상이다. 손을 잡아도 전기 하나 오지 않는 그런 무감각이 되어 버린다.
오래된, 결혼 한 부부에게 모두 물어본다면 아마 이 말이 사실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결혼 20년 30년이 되었는데도 서로 손을 만져 아직도 ‘전기가 짜르르~’ 흐른다면 그건 좀 과장이요 거짓말일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어쩌면 자연스런 부부의 모습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연애시절 사랑을 고백할 때와 고백을 밀어주던 열정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수순이 아닐까.
죽기 살기로 서로 좋아서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몇 년 못가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연예인 부부는 결혼 12일 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들은 신혼여행 다녀온 후 이혼했다. 사랑할 때는 죽을 만치 사랑한다고 하는 열정이 따르지만 현실에 따라붙는 상황이란 열정을 끝까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가 서로 손을 맞잡아도 전기 같은 거 오지 않는다고 사랑이 모두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얼음도 녹일 듯이 불붙었던 사랑과 열정은 먹고 살아가는 현실에 반영돼 순도가 좀 떨어질 뿐이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의식주 문제와 자식들 양육이다. 사랑과 열정은 자식의 돌봄을 포함한 삶과의 투쟁에 모두 바쳐지는 것 같다. 자식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부부들은 사랑과 열정이 신혼처럼 오래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새로움을 찾아가는 모순됨이 도사려 있기에 그렇다.
자식이 없다면 하는 일과 사업에 혹은 더 큰 존재와 절대가치에 사랑과 열정을 바칠 수도 있다. 그 절대가치 중 하나는 종교일 수 있다. 사람의 사랑이 변하여 열정이 식어지는 것은 어쩌면 순리일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 수 없기에 그렇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였나. “우주의 모든 것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것은 다 변한다.
사람은 가끔 돈키호테와 같은 열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산초 판자를 거느린 돈키호테처럼 자신의 열정을 있는 그대로 펼치며 밀고 나가는 뚝심 같은 용기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열정은 곧 사랑이다. 자신이 “이 길은 내 길” “이 사람은 내 연인”이라고 믿으면 그대로 밀고 나갈 일이다.
사랑의 날, 발렌타인스 데이가 며칠 안 남았다. 서기 269년 2월14일 성 발렌타인의 순교를 기념한 날이다. 로마 황제인 클라우디우스 2세는 군의 전력유지를 위해 법으로 군에 가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발렌타인 사제는 이를 어기고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을 도왔다. 그것이 발각돼 결국 그는 죽음을 당했다. 사랑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발렌타인처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랑만이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고전은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이 끝이 나나 사랑만은 영원하다”고.

김명욱 목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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