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재키 김(부동산 전문인)

2007-02-09 (금) 12:00:00
크게 작게
친구, 그 포근한 이름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친구가. 3명만 있어도 그 삶은 성공한 삶이다”라고 어떤 분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얼굴 몇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맺어온 긴 인연들이다. 그 친구들과 잊을수 없는 많은 추억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각할 때마다 나를 웃게 만드는 추억들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생물 현장실습을 갔을 때의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2박 3일로 인천 어느 섬으로 실습을 갔었다. 텐트도 치고 밥도 지어먹고 갯벌에 나가 여러가지 생물체도 잡았다. 건물들이 변변치않은 시골이라 화장실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간이화장실이 전부였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현장실습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가는데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간이화장실을 열어보니 당연히 휴지가 없었다. 텐트로 돌아가는 친구 한 명에게 휴지를 부탁하고 나는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십분이 지나고 이십분이 지나도 친구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쭈그리고 앉은 다리는 저려오고 화장실은 사우나처럼 푹푹 찌고, 밑에서 냄새는 올라 오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친구는 소식이 없었다. 엉거주춤 일어서보다가 다시 앉았다가…. 나가지도 못하고 밖에서는 볼 일 보려는 사람들의 노크가 끊이지 않고….

삼사십분쯤 기다렸을까? 더 이상 어쩔수가 없어서 정말 찜찜한 마음으로 바지를 추키고 화장실을 나왔다. 텐트로 가보니 내 부탁을 들은 그 친구와 또 다른 친구들은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내게 어디에 갔다 이제야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휴지를 부탁한 친구에게 “여태 화장실에서 너 기다리다가 안오길래 내가 직접 휴지 가지러 왔다”고 쏘아붙였다. 그 때, 잠시 무안한 얼굴을 하던 친구, 곧 웃음과 함께 라면이 튀어나오는 친구, 내 눈치 보느라고 억지로 입을 틀어박고 웃음을 참는 친구.

그 날의 사건은 친구들에게 잊을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또 공유했던 모든 것을 기억해내며 웃는다. 그날 화장실에서 쏟은 땀방울만큼 끈적한 우정을 늘 생각하며 산다. 미국 생활이 힘들 때, 누군가에게 허물없이 마구 떠들고 싶을 때, 그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해진다. 내가 가지고있는 허물까지도 받아줄 수 있는 친구,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친구,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내 편이 되어주는 그런 친구가 있기에 삶이 그렇게 고달프지만은 않은 것 같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