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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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 아버지, 그의 손

2007-02-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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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손만 잡고 걸어도 참 든든했었다. 고단한 아버지의 손은 내겐 참 투박했고, 그만큼 믿음직했다. 이 땅의 실향민의 가정이 다 힘들었겠지만 아버지는 1.4후퇴 때 함경남도 북청에서 월남하여 50여년간 두고 온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셨고 지독하게 소주를 드셨고, 번번이 우셨다. 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때마다 정말 목이 터져라 불렀다. 돈을 벌어서 번쩍번쩍 광이 나는 최고급 승용차에 잘 키운 아이들을 태우고 고향땅까지 몰고 가는 것이 아버지의 꿈이었다. 북녘 땅 가족 소식을 듣던 날을 기억한다. 고향 어머니도, 그 예쁘던 누이동생도 굶주림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차마 아버지를 바라볼 수 없었다.
홀로 이 땅에 자리를 잡느라 아버지는 참 고단하셨다.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하셔서 평생 성실하게 일하셨고 후엔 사업을 하셨다. 많은 실향민들이 우리 집을 부러워하였다. 실향민들은 삶의 뿌리를 내리느라 너무 고생을 했지만 삶의 변두리를 힘겹게 서성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가 북청 물장수의 기질로 우뚝 일어섰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슬픈 기질이 싫었다. 소주에 절어 울며 잠드시는 아버지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그 투박한 손에 담긴 억척보다는 더 따뜻하고 안락한 가정을 꿈꾸곤 했다.
지난 달 아버지를 여의었다. 임종을 지키며 가늘던 숨결이 멈추고 더 이상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울었다. 장례일정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등지고 살던 친구가 다녀갔다. 그 친구를 끌어안고 울었다. 서울은 참 추웠고, 언 땅을 파고 아버지를 묻었다. 우리 사남매는 아버지를 보내며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장례일정 동안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안아주고, 묶어주었다. 아버지는 가셨지만 전쟁 후에 이 나라를 세우고 건설의 현장에서 일했던 그 고단했던 아버지의 손을 나는 잊지 못한다. 평생 내게 크나큰 위안을 주던 손이었다. 한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난다는 건 남은 자들에겐 슬픔이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그 많은 실향민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그리던 고향도 어머니도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피 끓게 그리워만 하던 참 불쌍한 한 실향민의 영혼이 그리운 분들 보러 하늘나라에 가셨다.

김수현
작가·부동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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