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길’따라 순례 3년
정해년 새해도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나갔다. 새로운 해를 맞으면 많은 사람들이 신년계획을 세운다. 다이어트나 금연, 혹은 가족의 건강이나 화목을 꿈꾸기도 하고, 사업의 번창이나 세계평화에 대한 기원까지 다양한 바람들이 마음속에 새기곤 한다.
올해의 계획 중에 가족과 함께 더 시간을 갖는다는 항목을 추가해보면 어떨까? 한해가 다르게 성숙해져가는 자녀들과 더 늦기 전에 대화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늘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색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작은 여행은 어떨까? 시간이 없어서 혹은 마땅히 갈 곳을 정하지 못해 미루고 있었던 가족 나들이를 실천에 옮기면 더 근사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얼마전 한국에서 출판된 우리의 책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21개 전체 미션 중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하는 미션 샌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의 보석이라 불린다>
‘미션을 따라가는 캘리포니아’라는 제목의 이 책은 2006년 11월 한국에서 도서출판 평민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30년 역사의 평민사는 인문사회과학 서적 전문출판사로서 탄탄한 역량과 전통을 지닌 곳이며 지난해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왕의 남자’의 희곡을 출판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캘리포니아의 21개 미션과 미션 주위의 도시를 찾아다니고 또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아 정리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은 마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처럼 새로운 흥분과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간의 결실이 ‘미션을 따라가는 캘리포니아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으며, 마침 사진작가 박형주의 도움으로 미션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들까지 책안에 담을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마치 눈으로 직접 보는 듯이 생생하게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글을 쓰려고 했다. 바쁜 일상을 잠시 잊고 차분히 18세기 캘리포니아가 만들어질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휴식과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쓴 책이다. 이 책은 현재 세종문고와 정음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미션을 따라가는 캘리포니아 이야기’책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앞으로 본 지면을 통해 6회에 걸쳐 샌디에고, 로스앤젤레스, 샌타바바라, 샌루이스 오비스포, 샌호제, 샌프란시스코 등 6개의 도시 주위에 있는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글 : 박진선(여행작가), 정영술(UCI 특별연구원)
사진 : 박형주(사진작가)
안정된 한국에서의 직장을 접고 대학시절 가졌던 미국 박사학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채 백일이 되지 않은 아들과 우리부부는 2001년 9월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도착하였다. 아는 이 없는 낯선 땅과 7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 둔 채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공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왔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그동안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놓고 빈손이 되었다. LA 공항에 내린 순간 우리는 가을날 수확을 거둬들이기 위해 이른 봄 씨를 뿌리는 마음가짐으로, 뜨거움이 가시지 않은 9월의 캘리포니아 태양을 바라보며 폐속 깊이 더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 그때 우리는 캘리포니아 미션을 만났다. 우리가 살던 어바인에서 차로 20분 정도 남쪽에 위치한 샌후안 캐피스트라노 미션을 처음 찾은 것은 2002년 여름이었다. 처음 미션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야릇한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멀리 스페인에서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땅을 개척하기 위해 온 프란체스칸 수도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미션에는 새로운 땅에 도착해서 새 삶을 일구어 온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과 꿈과 고뇌, 그리고 정착 원주민들과의 갈등와 공존의 역사가 어우러져 있었다. 마치 우리가 새로운 희망과 꿈을 안고 미국에 온 것처럼 300여년 전에 프란체스칸 수도사들도 그러했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삶과 우리의 현재 모습이 조금은 겹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프란체스칸 수도사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가톨릭을 전파하고 유럽의 농경과 정착기술을 가르쳤다>
그때부터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캘리포니아에 흩어져 있는 21개의 미션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섰다. 또한 캘리포니아 미션연구(California Mission Studies Association)에 가입하여 정기적으로 저널을 받아보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통해 미션의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그리고 예술적 가치 등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미션을 통해 초기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스페인 프란체스칸 수도사들의 발자취와 그 당시의 캘리포니아를 만날 수가 있었다.
스페인 수도사들이 미션을 짓기 위해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갔던 길을 ‘왕의 길’(El Camino Real)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의 ‘US 101번 도로’이다. 스페인 수도사들은 이 ‘왕의 길’이라 불리는 루트를 따라 시간상으로는 1769년부터 1823년까지, 거리상으로는 남쪽의 샌디에고부터 북쪽의 소노마 지역에 이르기까지 약 900킬로미터의 거리를 대략 21등분하여 총 21개의 미션을 캘리포니아 지역에 건립하였다.
이렇게 각각의 미션이 건립된 지역은 훗날 샌디에고, 로스앤젤레스, 샌호제,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캘리포니아의 주요 도시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미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이 캘리포니아의 초기 역사와 미션을 바탕으로 발전을 거듭해 캘리포니아 주요 도시들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미션의 역사가 캘리포니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를 이해하는데 절대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미션이란 이야기가 된다.
미션은 언제 어떤 이유로 캘리포니아에 생기게 되었는가?
1769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는 군대와 가톨릭교회의 종교 지도자들로 구성된 팀을 캘리포니아 샌디에고로 보낸다. 이 때 캘리포니아에 온 군대의 최고 사령관은 돈 개스퍼드 포톨라(Don Gasparde Portola)였으며, 후세에 미션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었던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신부도 함께 왔다.
스페인 군대와 수도사들이 맡은 임무는 캘리포니아에서 수천년 전부터 살아오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미션 안에서 함께 살게 하면서 가톨릭을 전파하고 더불어 스페인 방식대로 살게 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중요한 방편으로 스페인은 유럽식 성당인 가톨릭 미션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가톨릭 수도사들과 스페인 군대는 캘리포니아 서부해안을 따라 이동하며 아래로는 샌디에고에서부터 위로는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이르기까지 모두 21개의 미션을 건립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스페인은 비교적 평화적이고 손쉽게 캘리포니아의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후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캘리포니아를 식민지배하게 되는 틀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캘리포니아 21개 미션 트레일. 남쪽의 샌디에고 부터 북쪽의 소노마까지 고른 간격으로 위치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