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가장 소중한 것

2007-01-2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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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주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행사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말에 많지만, 마음이 있다면 일년의 어느 때라도 나눌 기회는 많다. 자연재해처럼 슬픈 기회도 한번씩 찾아와서 많이 가지지 못한 것에 한탄을 더하게 된다.
얼마 전 새크라멘토에 있는 로레또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빠진 어린이에게 가발을 만들어 주려고 머리카락을 잘라서 보낸 것이다. 십대 소녀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시원하면서도 허전한 목덜미를 만지며 미소짓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바로 옆에 있어서 학교 개방을 할 때 놀이삼아 구경한 적이 있는데, 지역 신문에서 이런 소식을 접하자 옆 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가 좋은 이웃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교복을 입는 여고생에게 몇 년 간 길러 온 머리카락처럼, 누군가에게 절실한 것은 내게도 가장 소중한 것이기 쉽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은 찬란한 행복이다.
한국에서도 가끔 평생 모은 전재산을 기부하는 할머니의 기사가 난다. 애면글면 동동거리고, 숨쉬기도 힘들 만큼 공기가 차가운 겨울에 장바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밤새 끙끙 앓아도 새벽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집을 나서서 벌고 모은 돈일 것이다. 너무 고생스럽게 돈을 벌면 돈을 번 사람은 한푼이 아까와 쓸 수가 없다. 귀하고 귀한 돈이라 나도 못쓰고, 금쪽같은 자식들이 돈 때문에 서로 다투거나, 그 귀한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도 가슴이 아파서 가장 의미있는 곳에 기부를 했을 것이다. 교육사업에 기부를 하는 것을 보면, 힘든 삶에서 배우지 못한 한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새크라멘토에 있는 슈라이너 어린이 병원은 화상입은 어린이들을 무료로 치료하는 곳이다. 기부한 금액이 2,000불 이상인 경우, 금액에 따라 기부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감사패를 증정하는데, 250,000불 이상을 기부한 경우는 금액에 따라 다른 종류의 네모난 판에 기부한 사람의 이름과 금액을 새겨 병원 1층 로비의 벽에 붙인다. 오백만불 이상을 기부한 사람의 이름이 가장 좋은 판에 새겨진다. 새크라멘토의 병원은 1997년에 세워졌는데, 휑 하니 넓은 병원 로비의 벽이 이름과 금액으로 가득하다.
적은 금액이나 생활필수품을 기부할 기회가 널려 있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특정 대상에게 줄 만한 재력도 없고 주변을 둘러봐도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뿐이라, 몇 불씩이라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내게는 선물처럼 반갑다.

몇 년 전까지 나는 내가 받는 혜택들에 감사하며 생활했다. 그 때는 많은 금액을 기부하는 사람들을, 추운 거리에서 창문을 통해 단란한 남의 가족을 바라보던 성냥팔이 소녀처럼 바라보았다. 지금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2007년 연말에는 물건과 돈으로 한 해동안 나눈 것의 가치를 합해 보고, 다음 해에 더 많이 나누는 것을 목표로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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