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부모

2007-01-2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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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시인)


꽤 오래 전에 나 역시 그랬겠지만 불룩한 배를 안고 다니는 임산부들의 모습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미모가 뛰어나고 용모가 단정하다 해도 막달이 가까워지면 누구나 평준화된 임산부의 모습이다. 그러나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 위대해 보인다. 마냥 신기해 보인다. 더욱 아빠가 될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자신의 분신을 잉태한 아내가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임신부는 당당하게 갈지자 걸음을 걷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배가 부르니까 힘들기 때문인 것이다.
한편 여자는 출산의 고통이 있기는 하지만 여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임신 4개월이 되면서부터 지속적인 태동을 느끼면서 아이와 무언의 대화를 얼마나 많이 주고받는가. 또한 아이가 태어나기 전 탯줄로 연결되어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아이는 엄마의 심장소리를 아빠의 심장소리보다 먼저 듣지 않는가. 그래서 아이가 울다가도 엄마가 안으면 울음을 그치는 이유가 너무도 익숙한 엄마의 심장 소리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져오는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을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표현할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다.
삶의 새로운 의미와 살아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준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부모는 사랑의 노예가 된다. 더욱 성장해 가면서 아이로 인하여 겪는 어떤 아픔도 고통도 감수하는 것이다. 시린 가슴을 안고 속은 텅 비도록 타버리고 겉은 바스러져 버리는 양파껍질 같은 것이 바로 부모의 삶이다.
그러나 자신을 닮은 새 생명이 자라나는 것으로 인하여 육신의 껍데기가 말라 비틀어져도 마음 뿌듯한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옛날 부모님들께서 이 다음에 자식을 낳고 키워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시던 말씀을 지금 나의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싶은 말이다. 사랑은 물 흐르듯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들어왔듯이 한 번도 부모님께 자식에게 하는 것만큼 살가운 사랑의 표시 한 번 못했다. 특별히 시부모님께는 늘 형식과 의무감에만 머물렀었다. 끊임없이 베푸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왜 사람이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흙과 같은 존재이다. 특히 부모의 삶이 그렇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땅 (大地)

겉옷뿐 아니라
속옷마저도 나누어준 겨울에
가시 달린 바람 맨 살 후려칠 때
살점 쩍쩍 갈라지며
사지 삭신 사시나무처럼 떨었었다

숨찬 호홉 날마다 무게 더하여
서걱서걱 뼈골 패였지만
가슴에 잉태한 씨앗
두 팔로 감싸안고 있었다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도 수혈하느라
현기증 일어도
하얀 모시 같은 뿌리 기지개 치며
갸륵한 새 생명
천상을 향하여 태어나도록
한마디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의 기도 드리고 있었다

마침내, 대를 이은 종부(宗婦)처럼
해산의 진땀 훔쳐내며
희열의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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