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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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뮤어 트레일산행기 <5>

2007-01-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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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등반가 김장숙씨의 존 뮤어 트레일산행기 <5>

사랑 일깨워준 인정넘친 산행길

우리는 다섯 명이었다. 먼저 봄에 PCT 에서 만난 서선생님 부부, 70을 바라보는 은퇴하신 곰 사냥 전문가와 65세인 조용한 미지언니이시다. 우리는 아침 7시를 출발시간으로 정했는데 이분들은 6시 반이면 짐을 먼저 챙겨서 준비하셨다. 서선생님께서는 미지언니에게 배낭을 메워 주시면서 등을 톡톡 치며 먼저 보내셨다.
아내의 걸음이 느린 것을 감안해서 공동생활에 차질이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는 무거운 것은 당신이 다 짊어지시고 60파운드에 육박하는 백팩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사냥하신 곰 고기로 만든 육포도 가져오시고, 대접 받기를 좋아하는 세대인데도 불구하고 똑같이 일하시고 오히려 챙겨주시는 존경스러운 어른이시다. 조만간에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함께 가기로 했는데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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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배낭을 대신 메주겠다고 했던 천사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흰 수염에 지팡이를 쥔 한 남자(가운데)와 두 여자(양쪽 끝)를 만나 산행이 즐거웠다. 가운데 남자 왼쪽이 필자, 오른쪽은 서선생님>

칠일째 지난 어느 날 Vermilion 재공급 지나서 가파르고 힘든 스위치백으로 끊임없이 올라가는 Bear Ridge Summit을 갔다. 그 스위치백의 중간에서 비숍패스에서 시작해서 튜알로미 메도우까지 가는 유재일씨와 그 동행을 만났다. 그 긴 여정 중에 계획한 대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유재일씨는 알래스카 매켄리 등정까지 끝낸 경험자이시다. 서선생님 차를 South Lake 주차장까지 옮겨갈 사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분들이 그곳에 당신들의 차를 놓고 튜알로미 메도우까지 갈 계획인데 셔틀이 없이는 처음 장소로 돌아갈 수가 없다. 서선생님이 당신차를 이용하도록 허락하셨다. 나는 우리가 틀림없이 성공적으로 여정을 끝낼 자신이 있으니 차를 위트니 포탈까지 옮겨놓자고 주장했고 유재일씨도 같은 의견이었는데 서선생님께서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 딸 아령이가 LA에서 차를 가지고 올라왔었다. 덕분에 Bishop에서 근사한 바비큐 점심을 서선생님이 우리 모두에게 사주셨다.
이날 작은 사건이 있었다. 힘든 오르막길 후에는 즐겁고 편안함이 따라온다. 길 따라 물이 있었고 적당한 장소에서 나는 목욕을 했고 세영이와 마리아는 수영도 했다.
빨래를 한 후 낮잠도 한숨 잤다. 미지언니는 오르막길에 유난히 늦고 못 따라오셨다. 그분이 지나가실 때까지만 쉬어가자는 속셈이었다. 한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 나타나셨다. 아마도 우리 모르게 가셨나보다 생각하여 백팩을 둘러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서선생님의 텐트와 캠프파이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5시가 넘었는데 왠지 이상했다. 혼자 계셨던 것이다. 확실히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우리 모두 말없이 불꽃을 보면서 앉아 있었다. 기다리던 1시간이 정말로 하루 같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서선생님이 헤드라이트를 쓰고 비상식량을 들고 나오셨다. 그때, 트레일 끝에서 비적거리면서 지친 미지언니가 나타났다.

낯선 등반자도 ‘친절한 이웃사촌’
무거운 짐 거들어주고 길안내까지

얼마나 반가웠는지. 미지언니는 중간에 갈라지는 길에서 다른 길로 들어가서 2마일을 가다가 어떤 친절한 사람의 도움을 받고 돌아왔다. 그 오는 길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며 초조했는지,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과 텐트만 봐도 반가웠다가는 실망하고 했던 그 연속적인 감정들을 얘기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으니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우리는 13마일을 걸었는데 당신은 오늘 4마일이 더 긴 17마일을 했으니 우리 중에 수퍼이시며, 트레일이 끝날 때에는 누구보다도 4마일 더 걸으신 영웅이 되신다고 위로해드렸다.
일행중 또 다른 주인공은 독일에서 방문차 우리 집에 온 친정언니의 딸, 21세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등산에는 생 초보인데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는 강한 처녀, 대견스러운 조카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부가 지겨워서, 사실은 졸업식 때 상을 휩쓸었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을 쉬고 1년을 세월 보내기를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가나에 가서 원주민 집에 기거하면서 고아원을 돕고 지냈다. 또한 마리아는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한 학기를 다닌 적이 있는데 한국어가 아직도 낯선데도 불구하고 반 친구들과 똑같은 시험을 보아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인생의 경험을 중요시한다. 아프리카에 있으면서 장래희망을 바꾸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그래서 의과대학 지원서를 냈고 독일에 돌아간 후에 최고의 의과대학인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마리아는 글을 잘 써서 에세이 장학금을 받아서 비인에 갈 수 있었다. 존 뮤어 트레일 기행문을 쓰기로 서선생님과 약속을 했건만 그 결과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요세미티에서 선 라이즈로 가는 첫날, 마리아는 가파른 언덕에 처음 시작하는 무거운 백팩을 견디질 못해서 비 오듯 땀방울을 흘릴 때에는 뒤돌아 내려가고 싶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요세미티 숙소에서 이틀을 더 머무는 동안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그녀는 누구에게도 쳐지지 않고 1만피트 넘는 고산지역을 똑같은 페이스로 오르내렸다. 고단한 하루 여정 후 내일의 물을 위해서 물통들에 물을 정수할 때도 자원하여 시냇가로 내려갔고 당번이 아닌 설거지도 함께 돕고 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많은 지나친 많은 사람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둘째날 선라이즈를 지나서 Cathedral Pass를 향해가고 있었다. 존뮤어처럼 보이는 흰 수염에 지팡이를 쥔 한 남자와 보기 좋게 생긴 두 여자를 만났다. 세 명의 남녀는 사오십대 백인들이었는데 한가롭게 주위를 걷고 있었다. 우리의 배낭이 너무 무거워 보였나 보다. 헤어지면서 그들이 먼저 가다가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배낭을 당분간 자기들이 메고 가고 싶다고 제의를 해왔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거절했지만 그렇게 따뜻한 사람을 만난 사실에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미국은 기록의 나라이기도 하다. 존 뮤어 트레일의 지금까지 기록인 7일 완주를 갱신하려고 하루에 40 마일씩 거의 뛰어 다니는 사람을 만났다. 조그만 배낭에 반바지, 운동화를 신고 우리를 마주 지나쳤다. 저런 복장으로 비라도 만나면 얼마나 추울까, 저 배낭 속에 슬리핑백이라도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위트니 포탈에서 만난 파크레인저가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더해 주었다. 그는 65세라 했다.
따뜻한 낮 오후에 자고, 밤에 헤드라이트를 이마에 차고 뛴단다. 당연히 슬리핑백이 필요 없고 배낭을 줄일 수 있다.
사실 그렇게도 사모했던 존 뮤어 트레일도 세월이 지나니 무뎌졌다. 나는 이번에 발렌시아에 새 치과오피스를 개원하게 되었다. 리스 계약을 위해 랜드로드를 만났다.
우연찮게 존 뮤어 트레일 이야기가 나와서 작년에 나도 했노라고 했더니, 그럼 Palisaide Lake 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나는 바보처럼 그게 JMT에 포함되는 호수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Virginia Lake을 좋아하냐고 했다. 그는 나의 경험을 중요시 했지만, 존뮤어 트레일에 대한 나의 기억과 경험이란 무엇인가. 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돌이켜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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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세영이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독일에서 온 마리아는 독일에 돌아간 후 최고의 의과대학인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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