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년은 기독교회, 481년은 회교사원으로 사용된 문명충돌의 현장
비잔친 건축의 극치
916년간은 성당으로, 481년간은 회교사원으로, 그리고 현재는 이스탄불의 박물관으로 변한 소피아 대성당은 기구한 운명을 지닌 건축물이다. 건물 정문에 들어서면 한 눈에 소피아가 겪은 파란만장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돔의 천장에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홀 중앙에는“알라는 유일하다”는 구호와 함께 이슬람 성인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8미터의 대형 원판이 걸려 있다. 그리고 사면 벽에 예수와 성모 마리아 모자이크 그림이 절반쯤 회칠해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무슬림들이 회칠해 지워버린 기독교 성인 모자이크를 원상복구하려 했으나 절반만 성공한 상태다. 현재 홀 안 여기저기 대형 사다리가 놓여 복구작업이 한창인데 그 엄청난 비용을 유네스코와 하버드 대학이 부담하고 있다. 터키 정부 혼자서는 예산상 힘이 벅차 불가능한 모양이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소피아 성당 메인 홀. 천장에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홀 가운데는“알라는 유일하다”는 글이 쓰여진 원판이 걸려 있다>
소피아 대성당은 AD360년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건축된 후 두 번 불탔다가 537년 유스티아누스 1세에 의해 재건되었다. 유스티아누스는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그 웅장함에 감격해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능가 하도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나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했을 때 그는 소피아 성당에 제일 먼저 달려가 성당의 흙을 머리에 뿌리면서“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고 외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문 입구에 그려진 예수를 안고있는 성모마리아>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보다 1,000년이나 앞서 세워진 소피아 대성당은 비잔틴 문화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의 성당이라기보다는 동방 정교회를 상징하는 교회다. 그리스가 이 건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보수작업을 맡겨줄 것을 원했으나 견원지간인 터키 정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름도 두 개다.
<소피아 박물관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직원>
그리스어로는 이 성당을‘하기아 소피아’ 터키어로는‘아야 소피아’라고 부른다. 술탄 메흐메드는 이 건물을 허물지 않고 밖에 4개의 미흐잔(탑)을 건축하고 내부에 민바르(설교단)를 설치하는 등 회교사원으로 고쳐 놓아 회교 성지 중의 하나로 등장했었다. 그러다가 오스만 제국이 사라지고 터키가 공화국으로 재탄생한 후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소유권을 주장하자 아타투르크 대통령은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도 이 건물 안에서는 종교적인 행사가 금지되어 있다. 교황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성호를 그었다하여 말썽이 난 적이 있기 때문에 지난 12월 베네딕토 16세는 소피아를 둘러보면서 성호를 긋지 않는 조심성을 보였다.
소피아 대성당은 돔 바로 아래에 40여개에 이르는 창이 있어 해가 뜨면 이곳을 통과한 빛이 벽에 그려져 있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금장 모자이크에 부딪치면서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회교국인 터키가 복구작업에 성의를 보이지 않아 오히려 이 건물의 기독교적인 요소가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그리스측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측은 기독교적인 요소를 살리려다 보면 회교적인 요소를 지워 버려야 하기 때문에 민감한 문제라고 해명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을 함께 지니고 있는 기이한 건물 하기아 소피아는 과거의 시제로 현재를 조명하는 문명충돌의 역사적 현장이다.
<석양에 붉게 물든 하기야 소피아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회교사원으로 개축된후 아랍식 무늬가 새겨진 기둥>
<이 철> 이 사
clee@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