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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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뮤어 트레일(JMT) 산행기 <3>

2007-01-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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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등반가 김장숙씨가 쓴
존 뮤어 트레일(JMT) 산행기

8월20일에 요세미티 밸리에서 해피아일스를 출발해서 9월4일에 위트니산 정상을 오른 후 9월5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총 17일간의 여정이었는데 위트니 산을 내려오면 공식적인 JMT가 끝나므로 16일에 마친 셈이었다. 이상적인 트레일 기간은 보통 20일에서 30일이라고 한다. 짧은 휴가 때문에 단축하려 노력했다.
초보자인 우리가 16일 동안 218.3마일을 무거운 백팩을 메고 걸었다는 것은 정말 대견스런 일이다. 사고 없이, 커다란 분쟁 없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마친 사실에 대해 정말 감사할 뿐이다. 서 선생님의 조용하신 리더십, 미지 언니의 숨은 배려, 그리고 세영이와 마리아의 불평 없는 협조, 마지막으로 나의 플래닝이 어우러진 작품이라 하겠다.
10개의 pass를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위트니 정상에 올랐다. 처음으로 1만피트 넘어간 pass가 Donohue Pass(1만1,056)이다. 튜알로미 메도우를 지난 후 멀리보이는 높은 산에 눈이 보였다. 얼마나 올라가야 할지 걱정스러울 밖에. 처음으로 백팩을 메고 따라나선 마리아가 가다가 자주 쉬었다. 서 선생님이 저 앞서 가고, 그 다음 세영이가 따라갔다. 나는 마리아 뒤에 붙어서 그녀를 살피며 갔다. 미지 언니는 뒤에서 당신의 페이스 맞게 조절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오셨다.
가장 힘들었던 Pass는 Mather Pass(1만2,100)였다. 킹스 캐년으로 갈라지는 Palisade Creek(8,020) 에서 시작해서 4,080피트의 고도가 높아지기까지 계속 무거운 식량을 짊어지고 걸었던 것이다. 가장 높고 마지막 Pass인 Forester Pass(1만3,120)에 발을 딛었을 때에는 감개무량할 뿐이었다.
미지 언니가 천천히, 쉬엄쉬엄 가는데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어떤 남자가 너도 저기에 올라 가냐고 하더란다. 조그만 백팩을 메고 혼자 잘난 듯이 갔던 그 사람을 나도 기억한다. 미지 언니가 투지의 용사로서 지내온 열흘 넘는 그 날들을 그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모든 산행이 그렇듯이 올라갈 때는 다시 내려올 기쁨을 생각하고, 쉽게 내려갈 때는‘산이란 또 올라가야 해’라고 마음으로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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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작용으로 부서진 돌들이 쌓여 있는 길을 걸어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들>

투지의 용사 미지언니


Pass를 향하여 출발하는 시간을 아침으로 배려했다. 간밤의 편안한 안식으로 다리의 힘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가장 걸음이 느린 미지 언니가 Pass에 오를 시간을 대충 잡아놓고 시작했는데 미지 언니는 언제나 예정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먼저 올라온 우리는 낮잠도 자고, 요가도 하고, 책도 보면서 기다렸다. 파란 하늘과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수도 없이 많은 산과 호수들, 그리고 따스한 햇살과 살랑 지나가는 바람 속에 두발바닥을 바위 위에 버티고 서서 하늘을 손끝으로 찌르며 숨을 멈추었다 내쉬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버린 요가 수행자를 상상해 보라. 그 순간의 주인공이 나이었던 것이다.
미지 언니가 오시면 서 선생님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저 여자가 이렇게 빨리 온다고, 생각보다 30분 먼저 온다’면서 너털거리며 허허 웃으셨다. 마지막 발자국 디디는 것을 사진 찍고는 등산 스틱을 거두고, 백팩을 내려놓으시며 등을 안마해 주셨다. 오는 길이 어떠했냐고 자꾸만 묻고 말이 많아지셨다. 미지 언니가 느리기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우리는 시냇물을 만나면 빨래도 하고 목욕도 했다. 정말로 모든 것이 어우러진 행복한 산행이었다.

정상 앞두고 기타 레이크서 1박

위트니 정상을 앞두고 기타 레이크(1만1,483)에서 하룻밤을 잤다. 더 높은 곳에서 뒤돌아보니 꼭 기타 모양으로 생겼다. 이곳이 잠을 잘 수 있는 가장 높고 가까운 지역이란다. 이미 1만피트가 넘기 때문에 캠프 파이어는 금지였다. 양말을 빨려고 물에 손을 넣으니 얼음같이 찼다. 호수 너머로는 위트니 돌산의 반대편 돌 절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서너 시께 도착하였으므로 시간이 넉넉하여 슬리핑백을 큰 바위에 내다 말렸는데 바람이 심해서 돌로 눌러놓아야 했다.
여느 때처럼 해가 나오면 아침도 먹고 젖은 텐트와 슬리핑백을 말리려고 일찍 짐을 싸서 출발했다. 발밑에 찌그덕거리는 살얼음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걷는데 좀처럼 땀이 나질 않고 점점 추워졌다. 비상식량 에너지 젤을 지금 먹으라고 말해주고 나도 먹었다. 마리아가 자기 것은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말하면서 보여줬다. 아이구, 실수했구나. 오래전 마라톤 준비할 때 사놓았던 것들을 모두 가져 왔으니 정말로 오래되었구나. 우리는 위트니 정상에 갈 때까지 젖은 것을 말릴 장소도 찾지 못했고, 물도 못 만났고 계속 돌들만 보고 걸었다. 당연히 추워서 이침을 먹을 수도 없었고 그냥 전진만 하였다.
위트니 정상에 올라가는 trail junction(1만3,560)에 도착하니 백팩들이 즐비하게 바닥에 기대어 놓여 있다. 여기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가는가 보다. 먼저 올라오신 서 선생님 코가 추워서 빨갛게 변했다. 세영이, 마리아, 그리고 미지 언니를 기다리는 시간이 천년같이 길기만 했다. 조그만 물통과 재킷, 모자, 장갑을 가지고 미국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을 향하여 대열에 끼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오고 있었다. 풍화작용으로 부서진 돌들만이 쌓여 있고 간간이 야생 꽃들이 그 사이에 비집고 피어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마약에 취한 듯했고 자세들도 이상했다. 나도 모르게 내 등도 들뜬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몸의 일부 같던 백팩이 없이 걸으니까 균형이 없어졌나보다 생각했는데 기압이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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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고생 끝에 위트니산 1만4,496피트 정상에 올랐다. 서보경 선생님과 함께>

한 면만 가린 정상 화장실

기대하고 기대했던 정상에 도착하여 방명록에 사인하고 보니 서 선생님이 안 보이셨다. 한참 후에나 미지 언니와 손을 잡고 나란히 오시는 것이 보였다. 핑크색 재킷과 빨강색 재킷이 참 잘 어우러졌다. 마지막 순간에는 왜 같이 오셨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경이로운 것은 그 정상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붕 없이 한 면만 막히고 삼면이 트여서 하늘아래 그냥 있었다. 딱 한개 있었다. 남자들은 그냥 서서 일을 보기도 하지만 여자들이 앉아서 일을 보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아무 것도 없는 트인 공간이라서 감출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세영이 보고 망을 좀 봐달라고 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세영이는 그렇게 부탁하는 엄마가 창피했는지 멀리 달아나버렸다. 나쁜 자식. 그래서 1만4,491피트 정상에서 보디가드 없이 두렵고도 외롭게 노천 화장실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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