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잊지 못할 그때 그 여행

2006-12-1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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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원(아름다운재단 간사)


친구들과 특별한 일정없이 훌쩍 여행길에 올라본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대학 첫 여름방학, 서울에서 밤기차로 내려가 쏟아질 듯한 은하수와 새벽 별들을 감상하며 소백산을 등반한 적이 있었다. 사전조사도 없이 무턱대고 떠났던 우리들은 그야말로 야심만만하게 텐트며 코펠이며 쌀과 고기까지 다 싸서 짊어지고 갔다. 기차에서 수다 떠느라고 잠도 한숨 안 잔데다가 대여섯 시간을 고생하여 목적지에 당도하니 해발 1440미터 정상까지 오른 기쁨은 잠시 뿐, 정말 지치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아침을 맛있게 지어먹을 기대에 부풀어있던 천진난만한 우리에게 믿지 못할 날벼락이 떨어졌다.

밥지을 물이 부족해서 관리사무소 비슷한 건물에 찾아가 물을 좀 달라했는데, 첫째, 소백산은 국립공원이므로 일체의 취사 및 야영이 금지이며, 둘째, 여기는 산 정상이라 물이 귀한데 마침 펌프질 하는 날이 다가와 물 한 대접도 나눠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민박집까지 가려면 다시 몇 시간을 내려가야 되는데 그럼 우리 모두 객사할 거라고 아무리 졸라대도 원칙을 중시하는 관리인의 단호함은 꺾이지 않았다. 이를 어쩌나 천근만근 무거운 발길을 돌려 몇 발 걸었을 때, 갑자기 안개가 걷히더니 눈앞에 다른 구조물이 보였다. 천우신조라, 천문대였다.


별을 보는 게 직업인 사람은 인간미가 철철 넘치리라 믿으며 우리들은 철문이 부숴져라 두들겨댔다. 밤새 관측하고 막 잠이 든 모양인지 눈을 비비며 나온 아저씨를 부여잡고 두서없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외쳐댔다. 꼭 우리를 도와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대야 한다는 소심한 마음에, 별자리 몇 개조차 식별할 수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대학천문동아리에서 견학온 거라고 둘러대기까지 했다. 굉장히 어이없어하며, 그렇지만 매우 친절히, 그는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설비라는 천문대 자체의 시설말고도 훌륭한 부엌 설비에, 아늑한 거실에, 10사람 정도는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이층침대들에, 돔에 설치한 최첨단 오디오까지.

이 천문대는 모든 국내 등반가의 꿈이라 할 백두대간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산장과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해먹으려고 가져온 음식을 바리바리 꺼내다가 한상 차려먹은 우리는 천문대 구경도 하고, 돔에서 울려 나오는 엄청난 사운드의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저녁이 다 되어 내려왔다. 우리를 보내면서 하시는 말, “근데 나, 전국에 대학천문동아리가 몇 개 안되기 때문에 애들 이름이랑 얼굴 다 알어.” 아, 그래서 우리에게 천문관측 설비에 대한 설명보다 오디오 자랑을 더 많이 하셨던 거였구나……정말 인정 많은 과학자였다. 몇 일 후 신문에서 그의 얼굴을 봤다. 우리가 떠난 바로 그날 밤, 몇십년인가 몇백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굉장한 무언가가 있었는데 낮동안 불청객들에 시달리고도 관측을 잘 하신 모양이었다. 천문대가 없었다면 큰일났을 뻔한 위험천만의 여행이었지만, 그때의 철없는 무모함이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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