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 네가 너의 죄를 알렸다!”
“아이고 사또나리, 그저 땅 파먹고 사는 무지렁이 농사꾼인 이놈이 무슨 죄를 지으리까. 소인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이런 발칙한 놈, 저 놈이 제 죄를 알 때까지 매우 쳐라.”
그래서 동헌 마당의 형틀에 묶여서 볼기를 까고 곤장으로 ‘철썩’ ‘철썩’ 매를 맞고, 저녁때 감옥으로 징그러운 이방 녀석이 와서 “죄는 무슨 죄, 자네가 쌀 가마나 좀 여유 있게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죄라면 죄지. 그저 쌀 두어 가마니 갖다 바치고, 그냥 감옥에서 나가도록 하게나.”
이것이 옛날 돈 주고 벼슬 사서, 원님쯤 돼서 그동안 감투 쓰느라고 들인 돈 찾으려고 가렴주구(苛斂誅求)했던 탐관오리(貪官汚吏)의 돈 뜯어내는 한 장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세 또 수입을 올리는 놈(?) 하나 더 있지요. 곤장을 치는 형리입니다. 이 형리들은 볼기짝을 철썩철썩 유별나게 소리가 나도 별로 아프지 않게 곤장을 치는 기술도 있고, 아주 볼기짝이 별로 소리가 안 나도 한마디로 ‘유혈이 낭자하고 까무러치도록’ 아프게 치는 기술이 있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볼기 맞는 죄인(?) 가족들이 이 형리 허리춤에 동전이라도 찔러 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볼기 맞는 것이 달랐다 이런 말이니, 유식하게 문자를 써서 표현하자만 ‘고문 기술자’가 안 되겠는지요?
그러나 그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고문 기술자’는 이제 없어졌고, 물고문 전기고문 등등 정말 처참한 고문이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곳에서 처참했던 군사독재 시절이 있었고, 그 ‘고문 기술자’들이 공포의 대상이었겠지요.
그 중에서 현재 여당의 실세 중 한 사람인 김근태 당의장을 재수 없게(?) 고문을 한 ‘이근안 전 경감’이 저에게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생각은 그런 류의 사람들은 가혹행위를 함으로써 즐거움을 찾는다는 새디스트이거나, 출세욕에 불타는 냉혈한이거나, 좀 생각이 모자라는 하수인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근안 전 경감’의 얼마동안에 피신생활을 했다는 뉴스를 듣고는 그것은 동료 경찰이 눈 감아 주는 것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 같아 새디스트의 정신병자는 아니고 그 많은 ‘고문 기술자’ 중의 하나인 그가 유독 수배 대상이 된 것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변색하는 카멜레온도 못 되고, 김근태 의장을 고문했던 불운이거나, 좀 모자라는 하수인으로 충견 정도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긴 사설을 늘어놓은 것은 그가 7년간의 형을 마치고 석방되었을 때 나도 마침 서울 방문 중이었습니다. 정말 모든 언론에서 큰 뉴스거리로 다루는 것을 보고 이건은 ‘언론의 인권침해’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수인’으로 사실 그 고문을 지시했던 유령(?) 밑에서 ‘고문 기술자’라는 별명을 받으며 몹쓸 짓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지시한 그 누구도 형무소에 갔다는 소리 못 들었습니다. 확실히 ‘유령’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옛날 곤장 치는 형리처럼 뒷돈을 챙기는 ‘고문 기술자’도 못되는 부수입도 없는 직종이었습니다.
그는 검찰이 기소했고, 판사가 7년형을 내렸고, 검찰이나 시민단체나 그 어느 누구도 불복하지 않아 고등법원에 가지 않고 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는 돈이 많아 꾀병을 앓아 병보석된 것도 아니고, 현 정권이 이쁘다고 감형도 안했습니다. 꼬박 7년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었습니다. 죄 값을 에누리 없이 다 치루었다 이 말입니다.
그는 이제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로 평범하게 돌아갈 권리도 있고, 이웃에 할아버지로 살 권리도 있습니다. 더구나 그는 이제 깡패 두목, 마약 제조 판매, 부동산 금융사기 등등의 사람들처럼 다시 세상에 나와 재범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각심을 줄 사람도 이제는 못됩니다. 누가 그를 경찰로 다시 채용하겠습니까?
그러한 그를 어떻게 TV 카메라에 얼굴 내고, 또 대문짝 크기로 신문에 사진을 낼 수 있습니까? 여당 실세에 대한 아첨입니까, 고문당한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복수(린치) 기회를 주려고 부추기려고 언론에서 떠듭니까?
한국이 UN 총회에서 북한인권 규탄에 찬성표를 했다고 떠들썩 했습니다. 잘 했고, 언론에서 다루는 것 잘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 개인의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흥미 위주로, 또는 현재의 권력에 아첨하는 방식으로 기사나 방송을 보도 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많은 시민단체, 그렇게 요란한 사회에서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너무 조용한 것이 하도 이상해서 미국에 사는 내가 한번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영묵/워싱턴 문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