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장승원의 ‘시카고 모놀로그’

2006-11-0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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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How do you do maybe over there?” (뭣들 하는 거야!)
“I see you my eye, I see you my eye!”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You steal hair spray now before!” (방금 전에 헤어스프레이 훔쳤잖아!)
‘찬란하게 부서진 영어’를 구사하는 용칠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 ‘용칠이 놀랄 정도의 산산조각 난 영어’도 있다.
“Cop, Cop. Come here fast, fast. Crazy man, Korea crazy man, Killing, Killing.”
“Here wait for me. Korean 식당. Now come on! Now.”
이 글은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제 8회 재외동포 문학상 공모에 단편 소설 부문 가작으로 뽑힌 장승원의 ‘시카고 모놀로그’에 나오는 부분이다.

나는 찬란하게 부서지다 못해 결국은 산산조각나 흩어진 영어를 구사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고 많이 웃었다. 소설을 읽지 않은 남편에게 글 속에 이런 부분이 있었노라고 전해주다 웃음이 터져 말을 옮기지 못할 정도였다. 작가의 글 속에서 내 모습을 보고 몇 년 만에 온 몸을 흔들며 웃어 보았고 대륙 저편에 나같은 이가 또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소설 전체를 흐르는 줄거리는 이민 1세대로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그렇듯 결코 희극이 아니다. 기술도 돈도 없이 한국에 돌아 가지 못하는 이가 있고, 몸이 아파 누워 있으면서도 아들이 한국에 오는 것을 반대하는 어머니가 있다. 미국에 자식 손자 다 보내고 혼자 순대를 파는 할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아프게 맺혀 있고, 아이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와서 영주권을 받았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 딸아이까지 데리고 사라져 버린 남편이 있다. 매맞는 아내에서 버려진 아내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굳이 생명을 연장하려는 욕심도 없이 다른 생을 꿈꾸며 마지막까지 일을 하다 생을 마감하는 이가 있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피곤은 겹겹이 쌓이고 침실 하나가 있는 아파트에 세 사람이 살면서, 걸죽한 욕과 눈물로 사람 사이에서 응어리를 풀어가는 이들에게는 자잘한 웃음이라도 있다. 혼자서 안으로 삭이기만 하다가 죽으려고 먹은 약도 먹혀주지 않아 토해내고 마는 버림받은 남편을 내모는 것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이다.

저마다 다른 색깔의 고민과 아픔을 안고 이만한 웃음을 가지고 저만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그대에게도 나에게는 하루만큼의 하루가 있고, 지금의 삶이 내가 갈망하던 다음 생임을,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설픈 내 모습을 보고 즐거운 웃음이 나오기까지 꼬박 팔 년이 흘렀다. 나는 이제 내 못난 모습을 보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이 기쁘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얼굴에 빛이 없는 사람은 별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웃는 사람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행복한 사람의 얼굴에서도 빛이 난다. 올해도 여름 뒤에 가을이 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뒤 겨울이 오면, 눈구경을 하러 타호 호수를 다녀오는 길의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하고, 먼 곳에는 깃털처럼 눈이 내린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쓸어낼 일에 한숨을 쉬었는데, 낙엽을 쓸어내면서 겨울별과 깃털눈과 겨울 다음에 마당에 필 꽃을 생각한다. 다시 여름이 오면 아침과 저녁이 만나는 수평선으로 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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