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옷을 갈아입었다. 진초록에서 노란 빛깔의 옷으로. 나무뿐이 아니라 잔디마저도 초록의 카펫을 걷어내고 노란 색으로 깔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생각을 하니까 조금을 서글픔이 밀려오는 듯 하다. 왜냐? 앞으로 살 수 있을 날이 지금껏 지나온 날보다 적어지니 말이다.
나는 외출할 일이 없으면 잠자기 전에 세수를 하고 아침에는 안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검은 휘장이 드리워지는 때에 세수를 했다. 이삼 일에 한 번 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는 자긍심을 지니고는 말이다.
너무 맑아지는 하늘을 바라보자니 더불어 가슴에 말간 바람이 부는가 싶게 세수를 한 후 촉촉한 피부를 느껴보고자 영양크림을 발랐다. 그리고는 거울 속에 자리하는 내 얼굴을 보고는 입술연지를 그리고 싶어졌다. 예전에 손이 약간 떨리던 때가 있었다. 나도 여자이라 함을 알고 싶었는가 돌연 입술연지를 바르고 싶었다. 안경을 빼면 입술 윤곽을 알 수 없는데도 안경을 벗고는 그렸다. 그런 나를 보고 언니가 말했다. “제발 아서라”고. 그 후로는 괜히 부끄러워서 입술을 칠하는 일은 없다.
가을의 전주곡이 흘러나온 지가 어언 한달 하고도 반이 더 흘렀다. 하루에 하루가 더해갈수록 나무에서 떨궈지는 나뭇잎을 보니 덩달아 내 마음도 허전함이 깊어 가는 듯 하다. 그리고는 여린 빛깔이 연지나마 짙게 바르고 그 색향에 취하고 싶어졌다.
우리들의 손을 잡을 만큼 다가온 가을이 내일이면 아마도 온 몸이 느낄 정도로 다가설 것이다. 붉은 빛, 노란빛이 화려하게 나무를 감싸안는 이 때가 화사함 봄보다는 사람을 왜소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입술만이라도 아름답게 만들려는 생각이 들었을까?
가을을 왜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나 의문이 생겼다. 그 어는 것으로도 위안을 얻어둘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예전에는 남자를 생각하면 연쇄적으로 술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남자를 생각하면 선뜻 연상되어지는 것이 없는 탓으로 가을이 과연 남자의 계절이거나 하는 물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가을을 남자 분들에게 주었을 거로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립스틱을 발라서 과연 예쁠까 의문을 지니고 있다. 갖고 있는 입술연지의 색깔이 여린 색뿐이고, 그렇다고 내 앙증맞은 입술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강렬한 색깔을 선택할 용기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여간 내일은 교회를 가니까 찬스는 기회인 거다. 나타나지도 않는 색깔이지만 내가 쓰는 말로 ‘뺑끼’를 바르고 외출을 해야겠다. 그러면 혹 누가 알아, 진한 색깔을 발라보라고 누군가가 내게 립스틱을 선물할는지.
김부순 /버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