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가을에

2006-10-2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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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연<수필가>

세상에는 자랑하고 싶은 아름다운 것이 너무 많음을 새삼 느낀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 수가 더 해지는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올려다 본 하늘의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 자랑하고 싶고, 뒷 뜰에 꽉 차게 피어있는 국화의 색깔이 무척 아름다워 자랑하고 싶고, 코스모스의 자줏빛이 굉장히 아름다워 자랑하고 싶고, 열려져 드러낸 석류의 속이 신기하리만큼 아름다워 자랑하고 싶고, 제 철도 아닌데 피어나서 황홀한 향기를 흘리는 저 나리꽃도, 지는 붉은 해와 나들이 가던 흰 구름이 만나 만들어낸 기막힌 석양도, 기분 좋은 만큼 피어 있는 저 환상의 안개도, 어디 있다가한 낮에 잠깐 나와 키 작은 밀감 나무에? 안부전하는 허밍버드의 표현 할 수 없는 색깔도, 손가락만한 빨간 잠자리의 날개 무늬도, 앞 다리를 길게 뻗어 옆에 있음을 확인 시켜주는 고양이 형제의 기지개도, 주인의 어느 반응에도 상관없이 스스로 주인만을 따르는 흰 세퍼드의 선한 눈빛도 아름다워 자랑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꽃보다, 자연보다도 더 아름답고 가슴 뭉클하여, 막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 17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아들 이야기. 아버지는? 6.25 전쟁의 장애자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며, 병중의 어머니를 위해서는 당신이 직접 보살펴야겠다고, 결혼도 포기하고 수발드는 아들, 나의 수고가 곧 부모님의 행복임에 감사하다는 감동의 이야기, 촉망 받던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은퇴를 감행한 아름다운 이야기,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힘으로 자녀를 키우며 아끼고 모은 수백억의 재산을 남모르게 사회에 환원하신 분의 눈물의 이야기,? 보장된 부와 명예의 자리를 뒤로 하고 내려놓음의 진수를 보여준 이야기, 시쳇말로 신랑감 후보 순위에 새롭게 진입한 큰 교회의 목사님 자리를 마다하고 열악한 환경 속으로 가시며, 내가 있어야할 곳임을 몸소 알리는 멋있는 분의 잔잔한 이야기, 70 고희를 넘기신 분이 당신 보다 연령이 낮은 무의탁 노인을 씻기며 돌보는 사랑의 이야기, 다리가 불편한 반 친구의 가방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년 동안 들어준 개구장이들의 우정 이야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점심 굶기를 평범한 하루 일과로 지내던 학생이 주운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애를 쓰며 유혹을 이긴 건강한 이야기, 먼저 치매를 가진 부인을 젊은 날의 사죄하는 마음으로 간호일기를 쓰는 멋쟁이 할아버지의 용서 이야기, 이렇게 혼자 듣기에 너무 아깝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막 자랑하고 싶음은 내가 하지 못하는 귀한 일들을 하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바로 내 이웃이며, 이들로 인해 이 세상이 환하게 바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함이 안타깝고, 가을이 깊어지는 것이 아쉽고,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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