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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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중국인 낳는다”

2006-10-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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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은 숨은 가빠하지만 누구도 고소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객석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의 그 산소 튜브를 코에 걸고 있는 걸 발견할 수가 있다. 거얼무부터는 복무원이 승객들의 끽연장소 흡연도 금지시켰다. 우리 팀은 고산 체질인가? 물론 고산 경험이 많은 건 사실이고, 나는 네팔 쪽에서 티베트로 두 번 넘어온 경험이 있다. 그 때, 지근거리는 고소증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베이스 캠프가 된 식당 칸에서 조심스레 고량주를 마셔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산소가 나오는 첨단 기차라 그럴까. 아무리 빠른 기차라 하지만, 막막한 티베트 고원에 비하면 개미 마라톤에 불과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일본군이 만주로 쳐들어갔을 때, 도로와 철도를 점령한 것에 불과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칭짱철도와 도시는, 티베트 고원에 비하면 그야 말로 점과 선밖에 안 된다. 아득하게 펼쳐진 저 구릉 뒤쪽에도, 시선이 닿지 않는 남쪽 어딘가에도 티베트 유목민들은 존재할 것이다. 혹, 나는 점과 선만 보고 티베트가 중국에 중화되었다고 단정하는 건 아닌지 모른다.
밥 때도 아닌데 우리의 베이스캠프 식당 칸에 복무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 여자가 장비를 꺼내 놓고 맥박과 혈압을 재며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가한 틈에 나도 진료를 받기로 했다.
“간호사인가요?”
“아니오. 의사입니다.”
“그런데 왜 일반인 차림인가요? 하얀 가운을 입지 않고.”
내 손가락과 팔목에 기계 장치를 한 여자가 웃으며 대답한다.
“승객들이 필요 이상 겁을 먹을 것 같아 사복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당신은 혈압, 맥박 모두 이상 없습니다.”
“고소증으로 죽은 사람 없어요? 폐수종이나 뇌수종으로요.”
“없습니다.”

해발 5,072m 탕그라역

5,000m가 가까운 고도에서, 고량주도 한 잔했는데 이상 없다니 그 말이 좀 이상했다.
객석으로 가니, 난저우에서 탄 티베트 삼형제가 지루한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알프스 요들처럼 청아한 목소리로 메나리조 고음처리가 감동이다. 이들이 믿고 있는 부처님에 대한 찬불가인지 사랑 노래인지 모르나 투명한 고음이 퍽 애절했다. 나라와 국적을 떠나 황량한 목초지에 사는 목동들은 원래 이런 노래를 부르나 싶었다.
너무 노래가 좋아 손짓 발짓으로 몇 번 더 청해 들었다. 자신의 노래에 빠진 나에게 자신들의 집으로 오라고 말한다. 라싸에서 걸어서, 다시 5일을 더 가야 한다는 말에 티베트 고원의 넓이를 실감한다.
드디어 해발 5,072m 탕그라역이 가까웠다. 탕그라 산맥은 청해성과 시짱 자치구를 나누는 경계선이며, 최고봉 겔라다이동 봉은 6,621m로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양자강의 발원지다.
총 길이가 6,300k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의 시원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쿤룬 산에 이르면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마를 줄 모르고, 탕구라 산에 이르면 손으로 하늘을 잡을 수 있다는 옛 시의 감흥이 되살아난다. 둥그런 구릉과 초원은 진기한 풍광이었다.
진공 포장봉지도 부풀어


진공 포장한 사탕과 라면 봉지들이 기압 차이로 공처럼 부풀어올라 있다. 그럼에도 심각한 고소증이 없는 걸 보면 그 사이 적응이 된 모양이다.
탕구라역에서 정차하면 사진을 찍을 거라는 기대는 무산되었다. 무인 정거장으로 그냥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라싸까지 6번만 쉰다고 해서 역전이 그 숫자만큼 있는 줄 알았다. 그건 아니었다. 무인 정거장도 있었고, 역무원이 부동자세로 기차를 배웅하는 유인 정거장도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다. 티베트 고원에 무진장한 지하자원을 실어 나를 화물차와, 소위 완행열차도 다녀야 할 때쯤이면, 저런 빈 역사도 붐비게 될 것이다.
식당 칸에서 중년의 중국 남자와 대화를 나눴다.
“어디서 오셨나요? 그리고 어디를 가며, 왜 가는 거지요?”
“위난성에서 왔어요. 중국 본토에서는 사업이 힘들어요. 이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니 사업할 게 있나 가보는 중입니다. 중국 본토는 너무 경쟁이 심하거든요.”
라싸가 가까워지는 것에 비례하여 이 사람의 눈은 빛났다.

원주민 수보다 크게 앞질러

티베트에서는 여자가 아기를 낳지만, 중국인들은 기차가 사람을 낳는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쏟아낸다. 티베트 여자가 아기를 낳는 속도를 기차에 비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본토 각지에서 출발하는, 사람을 낳는 기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라싸에서 사업을 하려는 거군요.”
“그건 좀 생각해야 할 것이고요. 내 생각은 ‘야둥’ 근처로 가보려 합니다. 이 철도가 그쪽까지 연결된다고 하더군요.”
야둥은 인도와 나투라 고개 하나를 국경으로 두고 있다.
야둥에는 장사꾼으로 소문난 위난성 사람들이 많은 건물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게 티베트는 신천지겠다. 그런 신천지에의 이주를 중국 당국은 부추기고 있다.
장사꾼에겐 신천지로, 학생들에겐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서부로 가자!”고 구호성 슬로건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 결과, 도시에서는 중국인들의 수가 원주민인 티베트 인들을 이미 압도하고 있고 앞으로 그것은 고착화 될 것이다. 사람을 낳는 칭짱 철길은 칼금을 넣듯 고원을 동. 서로 나누고 있었다. 오후가 되며 기차는 마지막 역 나취를 남겨두고 있다.
초원과 민둥산에 야크와 양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시간이 지나며 그 개체 수가 더 많아진다. 벌써 기차를 학습했는지 동물들은 고개도 안 돌리고 풀을 뜯기가 바쁘다. 철길은 흙과 자갈을 돋우고 새 길로 탄생된 것이다.
양족에 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책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그건 동물에게는 인위적 분단선이다.
야크가 생전처음 보는 접근 금지 분단선은, 50미터 혹은 100미터에 하나씩 뚫려 있는 통로로 소통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까지 신경 쓴다는 게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검은 점, 흰 점처럼 박혀 있는 야크와 양이 사람 말을 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쪽과 저쪽의 종은, 철도로 나누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차는 나취에서 서서히 고도를 내리고 있다. 참고 자료로 산 중국 잡지에서 본 칭짱철도의 단면은 라싸를 향하여 줄 곳 내리막길이었다.
고도를 내리며 무수히 많은 양과 야크가 보이고, 티베트인들의 흙집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싸강이 분명한 물줄기 양안의 곡저 평야에는 티베트인들의 주식인 짬바의 원료 ‘라이보리’가 추수를 앞두고 누렇게 익고 있었다.
문성공주와 금성공주가 3년이 넘게 걸어왔던, 종착지 라싸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힘이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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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증의 영향에 대해 상주하는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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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000m에 자리 잡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롱북사원. <사진·윤석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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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재미 한인산악회원>신 영 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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