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영원한 짝사랑
2006-10-18 (수) 12:00:00
양주옥 <피아니스트>
다녀왔습니다 잘 갔다 왔니? 배고프지 않아 ? 네. 괜찮아요 학교에 다녀온 아들과 나눈 대화의 전부다. 무슨 말이라도 건네 볼까 방문을 열면 숙제한다며 음악을 켠다. 할 수 없이 멋적게 문을 닫고 저녁까지 기다린다. 식탁에 마주앉아 아들을 쳐다보니 왜 보세요? 좋아서. 아들이 피식 웃는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얘기 없니? 없어요.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아들. 그러더니 컴퓨터에 앉아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싱긋이 웃으며 눈길을 뗄 줄 모른다. 그 모습이라도 보려고 옆에 서면 왜요? 하고 묻는다. 아들이 좋아서 얼굴 좀 보려고. 마음이 여려서 저리가라는 말은 못하고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아무리 아들이라고 그렇게도 할 말이 없나? 딸 같으면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시간이 모자랐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딸이 왔다. 딸을 데리러 갈 때부터 마음이 설레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어련히 알아서 잘 먹으련만 그래도 따뜻한 된장찌개, 밥 한 그릇 먹이고 싶어서, 얼굴 한번 더 보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내려온 딸은 함께 온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얘기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돌아갔다. 얼마나 기다린 시간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버렸나 싶어 속이 상했다. 함께 온 친구들을 배려하는 딸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떠나버린 딸이 야속하기만 했다.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은 어땠는지, 약은 챙겨 먹었는지,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을 텐데 먹고 싶은 반찬은 없는지… 어쩌다 고기라도 먹으면 딸이 생각나 남편도 한마디 건넨다.
함께 있었으면 잘 먹었을 텐데… 옛날처럼 먹고살기 힘든 시대도 아니건만 뭘 보든 멀리 있는 아이가 생각난다.
옆에 있는 아들에겐 내가 해 주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삼 년밖에 안 남았는데 뭘 해주면 잘 먹을까,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식들 생각뿐이다.
’품안에 자식’이라 했던가. 어느덧 자식들은 내 품을 떠난 모양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않은가? 대학을 가면서, 결혼을 하면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그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집 떠난 아이들이 연휴가 되어 부모를 찾으면 그렇게 기뻐하며 함께 식사라도 하려고 바쁜 일정을 미루는 분들을 많이 뵈었다. 그분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이젠 절실히 동감한다. 부모들의 마음은 모두 같으니까. 모두가 자식을 향해 그렇게 받지 못할 사랑을 주고 있다. 영원한 짝사랑을. 그렇게 짝사랑인줄 알면서도 주면 행복하고 또 생각하고 또 사랑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 마음을 알까? 옆자리에 앉은 아들을 두고도 또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