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난중일기
2006-10-17 (화) 12:00:00
김현희<주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인물을 꼽으라면 난 이순신 장군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루에 겨우 두세 시간씩 밖에 잠을 못 잤던 사람, 그나마 식은땀으로 이부자리를 흥건히 적시면서 일어나야했던 사람, 그런 몸을 이끌고 13척의 배로 수백 대의 적선을 상대해야 했던 사람, 온 몸을 바쳐 싸우고 충성했건만 조정의 중신과 왕에게 끊임없이 모반의 의심을 받았던 사람, 두 번의 백의종군과 몸이 으스러지는 고문도 받았던 사람. 나라의 운명을 고스란히 짊어졌던 이순신 장군은 적의 총탄이 아니었어도 스트레스성 과로사로 돌아가시지 않으셨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그런 그가 전쟁의 와중에 일기를 썼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간단하나마 꼬박꼬박 기록한 일기는 도대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군사력에서 왜군에 비해 엄청난 열세였던 우리 수군의 수장으로서 전투에 임하는 매 순간이 결단의 순간 이였을 것이다. 왜군은 본군의 일부였겠지만 그때마다 전군을 동원해서 막아야 하는 장군에게 잘못된 판단은 곧 아군의 괴멸을 뜻했을 것이고, 국운을 적에게 내주는 일이었기에 날마다 날을 가는 심정으로 자신을 살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기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물론 난중일기가 장군의 자세한 심경고백이나 전술에 대해 언급하기 보다는 그날그날의 보고서 같은 내용이 더 많았다고 하지만 행간에 숨은 장군의 피로와 의지, 용기, 인간적인 괴로움을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난 홀로 앉아 일기를 적어 내려가는 장군을 생각할 때마다 신화를 벗어버린 한 인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비로소 한 인간으로 내려온 그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제야 나도 하루하루 반성하고 일기를 쓰다보면 장군과 비슷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삶의 깊이와 폭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도 걸어보게 된다. 인생의 간난신고(艱難辛苦)의 모든 과정을 헤쳐 오면서도 놓지 않았던 그의 일기처럼 내 삶의 여정을 같이할 일기를 더 늦기 전에 다시 쓰기 시작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