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아무나 할 수 있는 일

2006-09-22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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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연<수필가>

에레베이터를 혼자 타고 올라가는데, 두 명의 여자들이 타서 습관처럼 웃어 주었단다.
어색한 분위기로 몇 층 더 올라가서 먼저 내리는데, 함께 탔던 그들이 하는 말, 「쟤 너한테 관심 있나봐, 너 보고 계속 쪼개드라」「어유, 재수 없어」
학위 받고, 7년 만에 귀국한 대한민국의 건강하고, 평범한 청년의 귀국 소감이다.

이 곳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에레베이트를 타고 내릴때 서로에게 인사 하는 것이 어색 했고, 학교 교정을 지나 다닐 때 만나는 사람에게 「Hi !」하는 것이 어색 했고, 뒷 산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에게 웃어 주는 것이 어색 했고, Stop 사인에서 양보하는 것도, 시장 계산대에서 계산 할 물건이 한 두개일 때 앞 사람이 양보 해 주는 것도 모두 어색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곳 생활에 적응하다 보니, 아무나 하는 일이었기에 자연스레 몸에 배어, 생활화가 되어 갔단다.
그런데, 돌아가서 보니 마주 오는 낯선 사람을 모른 채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전철 안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에게 눈인사 한번 하지 않는 것이, 잘못 걸려온 전화에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무례하게 추월하는 차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인상 쓰고, 짜증내며, 신경질 내는 것이,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신호를 어기며 속도위반 하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자신도 서슴없이 했었던 때를 기억 했단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 하겠더라나?
멋 모르고 해댔던 그런 일들을 정말 할 수 없더란다.
이 청년의 귀국 소감을 들으며, 나는 이제까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별 부담을 느끼지 못하며 했었던 일은 없었나 더듬어 보았다.
신문 가판대에서 신문 한 부 값만 넣고 이 사람 저 사람 집어 주었을 때, 햄버거 샵에서 냅킨 한 줌, 토마토 캐찹 한 줌 들고 나왔을 때, 식사한 후 식당에서 한 두개면 족한 사탕이나 껌을 몇 개씩 가지고 나와 인심 쓸 때도 있었고, 필요도 없는 요지는 괜히 들고 나와 여기 저기 굴리면서, 이렇게 안하면 나만 믿지는 것 같은 생각에 괴로워했고, 드리이브 웨이도 아닌데 내 집앞에 누가 주차하면 심통 부리고, 차선 바꾸겠다고 신호준지 꽤 지났건만 못 본척 바짝 따라 가고, 9 품목 이하의 계산대에 뻔뻔하게 서 있기도 하고, 동전 자동 거스름 기에서 앞의 사람이 가져가지 않은 것까지 챙긴 적도 있으면서, 자동판매기가 내 동전 삼켰다고 두드리고 흔들며 분 풀이에 짜증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해냈었다.
7 년의 유학 생활에 선한 양심이 살아나고, 뜻밖의 애국자가 되었다는 청년의 고백에, 나는 20년 이민 생활의 얼룩을 이제야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나가 아니기를 소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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