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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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높은 나치전범이 50년간‘스윗 레이디’로

2006-09-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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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독일로 추방된 엘프리에데 린켈

라벤스브룩 포로 수용소 친위대원 전력 속이고
비자·영주권 신청서류 허위 기재 미 입국
남편에게조차 신분 감춘채 결혼 유대인 사회 활동
연방당국 끈질긴 색출작전에 걸려 끝내 쫓겨나

샌프란시스코의 유대인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스윗 레이디’라는 별명을 들으며 50여년을 살아온 엘프리에데 린켈(83).
그녀가 악명 높은 나치 여성 유대인 포로 수용소-라벤스브룩의 친위대원이었던 전력이 들통나 독일로 추방된 사실 때문에 친지나 주변이 경악하고 있다.
LA타임스는 20일 린켈 노인이 당뇨 악화로 한쪽 눈 실명상태에 극심한 관절염으로 지팡이에 의지한 채 지난 1일 2년 전 작고한 남편 프리드 린켈(독일계 유대인)이 묻힌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독일로 영원히 추방된 스토리를 전했다.
친위대 전력을 남편에게까지 비밀로 철저히 부쳐왔지만 그녀는 1979년 시작된 연방 당국의 끈질긴 ‘전범 제거 캠페인’에 걸려 결국 추방됐고 독일에서도 나치 전범으로 기소, 처벌될 운명에 처해 있다.
‘미국 내 전범 색출 전담반’은 독일 등지의 이민자 서류를 뒤지며 색출 작업에 나섰고 최근 라벤스브룩 수용소 간수 명단에 있던 그녀의 결혼 전 이름을 포착했다. 수사관들은 지난 4월 그녀를 방문하여 신문을 한 결과 나치 전력을 확인했고 또 그녀가 1959년 입국 때 비자와 또 영주권 신청서류를 허위로 기재한 사실을 발견했다.
린켈은 결국 라벤스브룩 수용소에서 1944년부터 1년간 간수직으로 재직했던 사실을 자백했다. 그러나 그녀는 “공장직보다 돈벌이가 좋아서 택한 것 뿐”이며 “상부 명령에 따라 근무는 했지만 유대인 포로 학대나 그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행위는 전혀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방 법무부측은 나치 하에서는 그녀 같은 직위의 간수가 유대인 학살과 학대의 중추역할을 맡았고 그녀가 재직했던 1년 동안 라벤스브룩에서는 1만명 이상의 유대인 여성들이 개스 학살이나 질병, 기아, 생체실험으로 죽었다며 추방령의 배경을 설명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의 기록에 따르면 라벤스부룩 수용소에는 1939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13만명 이상이 수용되었고 이중 생존자들은 4만명에 불과하다.
그녀는 2차대전 때 독일군으로 북아프리카에서 교전하다 미군에 포로가 된 남동생이 베이 지역에 먼저 정착한 후 방문 초청으로 1959년 입국했으며 이때 나치 박해를 피해 일찍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던 유대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이후 남편을 따라 유대인 커뮤니티의 활동에 열심이었고 따라서 친지를 비롯한 주변에서는 아무도 별명조차 스윗 레이디인 그녀의 전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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