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그리운 풍경
2006-09-20 (수) 12:00:00
양주옥<피아니스트>
무더위로 우리를 힘들게하던 여름도 지나고 어느 덧 가을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 많은 별들을 바라보노라니 어렸을적 생각이난다.
초등학교 때였던 것같다. 매일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 아마도 추석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식구들을 선산이 있는 경기도 오산으로 데려가셨다. 그리 시골은 아니었지만 내겐 모든것이 새로웠다. 추석 즈음이 되면 우린 국어시간에 가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도하고 미술시간엔 가을풍경을 그리기도 했었다.
으레 그렇듯이 ‘가을’하면 국화, 코스모스, 고추잠자리, 허수아비, 누런 들판 등등을 생각했다. 그렇게 책에서만 읽고 머리속으로만 그려보던 시골풍경을 눈으로 보고 있으려니 신기하기만 했던것이다. 돌아가신 조상들께 성묘를 하고 커다란 밤마무 가득 따가운 가시로 둘러싸인 밤을보며 어떻게 껍질을 벗기는지 아버지는 직접따서 벗겨주시며 해 보라고 하셨다. 까 주시는 밤만 먹다가 가시를 벗겨보니 밤 한톨 먹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결국 몇 개를 까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산 속엔 들꽃이 가득하고 길가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경운기, 누런 들판에 멋적게 두 팔 벌린 허수아비,사촌들과 누렁이 강아지를 데리고 놀던 기억이난다. 고모가 비벼주셨던 밥, 돌아오는 길에 주셨던 햅쌀로 지은 밥을 먹으며 식탁에서 주고받던 얘기들… 이젠 되돌아 갈 수 없는 추억들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 맞던 가을. 한국에서 가져온 국어책을 읽으며 아들에게 가을을 설명하는데 당시 한국에서 초등학교 일학년을 한 학기밖에 다니지 못한 아들은 아무리 설명을해도 이해하지 못했다.허수아비를 직접 보지도 못했고, 미국에선 고추잠자리를 볼 수도 없었으며 코스모스와 국화는 가을뿐 아니라 거의 사계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후와 환경이 달라 이곳의 가을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그런데 어느덧 아홉해 가까이 살다보니 이젠 이곳의 가을도 익숙해졌다.
서늘한 날씨, 드물지만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무성한 나뭇잎 사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 상점마다 단장한 할로윈 소품들… 어느곳이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계절의 변화를 보면 실로 놀랍고 경이롭다. 어찌 그리 오묘하신지…
이젠 느껴보기 힘든 내 나라의 그리운 풍경이 되었지만 우리아이들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이 가을에 다시한번 추억을 더듬고 싶다.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아이들과 송편이라도 만들며 훗날 그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또 다른 가을풍경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