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S라인 유감

2006-09-1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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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주부>

레마르크가 쓴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읽었던 한 장면, 전쟁 중에 휴가를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어린 소년 병사에게 이미 결혼해서 자식도 있는 아저씨 병사가 룰루랄라 말한다. ‘우리 집에 가면 살집이 통통한 마누라가 있다.’ 그러나 다시 만났을 때 아저씨 병사는 잔뜩 울상을 하고는 ‘통통하던 마누라가 전쟁 통에 바싹 말라버렸다’고 한탄을 한다. 이 글을 읽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전쟁하면 깡마른 여자와 비쩍 마른 아이들을 연상했고 평화라 하면 밥 짓는 연기가 폴폴 나오는 굴뚝과 엉덩이가 큰 살찐 아줌마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식사준비를 하는 부엌이 연상되곤 했다.
다산과 육아의 상징으로 아름답던 통통한 아줌마들이 완전히 사양품목으로 취급받은 건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시작은 ‘미씨족’이란 이름으로 애 낳은 아줌마들이 처녀처럼 몸매를 관리하고 옷을 입기 시작한 90년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각종 CF도 그런 층을 타겟으로 삼아서 많이 나왔고 오히려 그런 현상을 부추기기도 했다. ‘몸짱 아줌마’ 열풍으로 이어지면서 지칠 줄 모르게 계속되던 군살없는 몸매를 향한 염원은 44사이즈 유행과 S라인열풍으로 또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집안일도 완벽하게 하면서 몸매는 20대처럼 유지해야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는 세상에서 아줌마로 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효과도 많다. 한 때 제 3의 성(?)이라고까지 불리면서 부엌떼기 취급받았던 아줌마들의 당당한 귀환과 여성으로서의 성정체성(?)을 찾은 결과는 결코 가볍게 취급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 트랜드는 살림과 육아로 정신없이 바쁜 여자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더 얹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힘든 가사일을 끝낸 후에도 게으르게 몸매를 관리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잠자는 시간마저 쪼개서 운동을 해야하고 식단까지 제한해야하는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누구나 아름답고 싶고 그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생활환경과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잣대로 이상형을 만들어 모두에게 강요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은 듯 하다. S 라인의 몸매 전선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서부전선(?)도 이상 없이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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