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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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려오라” 최후통첩에 눈물의 하산

2006-09-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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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8일
아침에 눈을 뜨니 엄청난 바람에 텐트가 운다. 너무 추워서 도저히 텐트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매킨리는 혹독했다.
여름 텐트로 영하 30~40도의 추위를 버틴다는 것도 한계가 있나보다, 너무나 추워서 뼈마디가 저려온다. 일어나서 앉아 잊을 수도 없다. 좁은 일인용 텐트라 시속 50마일 이상으로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이 쉴 새 없이 텐트를 강타하며 내 머리를 때리기 때문이다.
9시에 시티에 있는 대원들을 불러보지만 교신이 안 된다. 다시 잠이 든다. 잠결에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다.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니 텐트 밖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11:13). 내가 에드워드라고 말하니 자기는 레인저라며 너희 일행이 너와 무전 연락이 안돼서 걱정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텐트 지퍼를 열고 밖으로 나가려니 눈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레인저에게 눈을 치워달라고 말하니 텐트 앞의 눈을 치워 준다. 텐트 밖으로 나오니 레인저가 추위에 떨며 서있었고 나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본다. 아무 문제가 없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텐트 주위의 눈을 치운다. 버너를 피우고 눈을 녹이는데 무전이 온다. 준해 형은 무전 교신이 안돼서 무척 걱정을 했다며 아픈 데는 없냐고 묻는다. 그래도 내 주위에 나를 걱정해 주는 대원들이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지옥 같은 이 곳을 빨리 탈출해 보려고 레인저에게 같이 안자일렌을 하고 내려갈 수가 있냐고 물어보니 한 마디로 거절이다.

2006년 6월 9일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른다. 며칠 째 이 곳에 머문 지도 모른다. 초조함이 앞서며 하루 빨리 내려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바람은 여전히 강하고 눈까지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버너의 기름도 거의 바닥이 나고 마운틴 푸드 하나로 아침과 저녁 두 번씩 아끼며 먹던 식량도 이제는 내일 하루치밖에 안 남았다. 아침 9시에 베이스캠프의 백 대장에게서 무전이 온다.
지금 내려오라고 한다(며칠 후 준해 형에게 들으니 어제 백 대장과 브라이언이 하이캠프로 올라오다가 다시 내려왔다고 함).
낮은 기압과 저산소, 영하 30도 이상의 추위, 사람을 날려보낼 듯한 강한 바람과 눈까지 오는 상황에서, 혼자서 산을 내려오라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 나보고 이 곳에서 죽으라는 거라며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아직도 많은 날이 남아 있고 이 곳에 오기 전에는 며칠 더 걸리더라도 꼭 정상을 하자고 했는데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된 거냐고, 어서 빨리 하이 캠프로 올라오라고 말하고 나니,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서 눈물이 난다.
한참 후 브라이언이 일기가 좋을 때까지 기다리라며 무전이 온다.
고소에 오래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극심한 체력 손실이 오고 균형감각에 이상이 온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고 나 역시 오아시스인 베이스캠프로 하산을 하여 쉬고 싶었다.
하지만 50~60마일로 부는 눈바람을 헤치며 칼날 같은 험한 리지를 도저히 혼자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버너의 기름도 바닥이 나고 텐트 밖으로 나가려니 눈이 덮여 있어 나갈 수도 없다.
마이클! 마이클! 하며 옆 텐트의 타이완팀을 불러 보지만 바람소리 때문에 들리지가 않나 보다. 텐트는 분명 바로 옆에 있었지만 그들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

2006년 6월 10일
지금 당장 내려오지 않으면 철수를 하겠다는 소리와 땅 속에 묻히는 악몽을 꾸다 폐소공포증에 걸린 듯 더 이상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서 벌떡 일어나려니 텐트를 찌그러뜨린 눈이 내 양옆 가슴을 누르고 있다. 침낭 속을 빠져 나오려고 해 보지만 나올 수가 없다. 양팔에 힘을 줘가며 공간을 넓히며 겨우 일어난다.
멍하니 앉아 무전교신 시간인 9시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 오후 1시에 모두들 철수를 한다며 빨리 내려오라는 준해 형의 무전교신에 “아직도 많은 날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내려가면 안 된다”고 말을 해 보지만 모두들 오늘 철수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엄청난 고생을 하며 지금까지 버티어 왔는데 여기서 힘 한번 써보지도 않고 포기를 한다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하는 수 없이 하산을 하기로 한다.
정상을 오르지 못하더라도 매킨리를 볼 수 있게 나를 이 곳으로 이끈 신에게 감사를 하며 무사히 베이스캠프까지 하산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버너를 피워 물을 만들어 아침식사를 하고 텐트를 걷고 눈 속에 묻힌 장비를 하나씩 챙기는 춥고 지겨운 절차가 3시간 이상 지속되고서야 한 명씩 생명 줄을 연결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14:56)
선두는 세 번씩이나 매킨리를 왔지만 정상 한번 못 올라가 보고 내려가는 타이완팀의 홍일점 조이가 서고(조이는 공무원으로 인도의 티리치미르(7,708m) 등반에서 동상으로 세 손가락을 잃어버린 대만팀의 여성 산악인) 두 번째는 K2를 다녀왔다는 트럭운전사 데이빗, 세 번째는 보험회사에 다닌다는 마이클, 후미는 사진이라도 실컷 찍게 해달라는 나의 부탁을 들어줘서 내가 보았다.
체력의 쇠퇴 때문인지 내려가는 몸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지만 이들과 같이 안자일렌을 하고 내려간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됐다. 이 날 하이 캠프에는 한 팀만 남고 모두들 철수를 했다. 앞장서서 내려가는 타이완 팀들이 너무 고맙고, 이제 이 곳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짬이 나는 대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저 아래 고요한 적막 속에 파묻혀 까마득히 보이는 매킨리시티를 보니 갑자기 서러움과 복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나온다. 무거운 짐 때문에 몇 발자국을 가지 못하고 한참을 털썩 주저앉았다가, 쉬고 또 쉬며 걷으니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매킨리시티가 코앞이다. 우리 팀의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니(20:51) 캠프 사이트는 비어 있었고 빈 공간 속에 작은 텐트 한 동만이 구석에 있었다.
“다들 떠났구나” 하는 서러운 마음에 한참을 넋을 잃고 서있으니 뒤쪽 텐트에 있던 체코팀 대원이 내게 다가와 배낭을 내려 줄까 물으며 내 배낭을 내려주며 이 무거운 배낭을 어떻게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느냐며 놀란다.
그때 구석의 작은 텐트 안에서 “재일이니” 하며 준해형이 나와서 걱정을 했다며 꽉 끌어안는다. “형! 집으로 돌아갈 날짜가 아직도 멀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철수를 해야 돼, 모두들 이 곳을 오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 하이 캠프까지도 못 올라오고,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자신의 장비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라며 애꿎은 준해 형에게 화풀이를 해본다.
준해 형도 눈물을 글썽이며 4명이 줄을 묵었다고 해서 저녁 내내 헤드 월만 쳐다보고 있었다며 “사고가 난 줄 알았어! 무사히 내려 와줘서 고맙다”며 운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다가 텐트 속으로 들어가 밤새도록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든다.
<다음주에 계속>


HSPACE=5


버너의 기름도 거의 바닥이 나고 마운틴 푸드도 하루치밖에 안 남으면서 최악의 상황에 봉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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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텐트에 쌓인 눈으로 아침이면 혼자의 힘으로 텐트에서 나올 수도 없다. 하이 캠프에서 다른 팀 멤버들이 서로 텐트에 쌓인 눈을 치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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