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산넘어, 바다건너 영주권을 받으러

2006-09-0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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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김

이민신청을 하고 5년, 그렇게 기다렸던 이민 비자가 드디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르나이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는 이민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쿠알라룸프르 (말레이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갔어야 했다. 참 힘든 고생길이었다. 마침 우리 인터뷰가 예정된 날이 동남아시안 게임과 같은 기간이었다. 그래서 비행기 표나, 호텔방이 예약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여행사에서 간신히 표를 구해주었다. 우리는 예정된 목요일 인터뷰에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
대사관에 일찍 도착해서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우리 차례가 돌아오자, 서류를 차근차근 검사하더니, 신체검사 서류가 빠졌다고 했다. 아버지의 가슴이 덜컹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렸다. 아니, 신체검사 서류는 우리가 직접가지고 가면 안된다 해서 DHL 우편물 배달로 일주일 전에 대사관으로 보냈는데. 아직도 받지 못했다니. 결국 작은 종이에 도장 하나 찍어주면서 화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비자업무를 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랑 나는 신체검사 서류를 찾으러 다녔다. DHL우편물 배달회사를 찾아 갔더니, 본부가 다른 빌딩으로 이사 갔다고 했다. 본부에 갔더니, 온갖 이삿짐들이 아직 개봉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컴퓨터로 배달 상황을 확인해 보았더니 공항에서 아직 세관통과도 못한 상태였다. 목요일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금요일에 공항으로 찾아갔다. 공항에서는 세관 수수료를 지불하면 서류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세관에 갔더니 담당직원이 한명도 없었다. 이슬람교는 금요일에 예배하기 때문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할 수없이 토요일에 다시 와야 했다. 우리는 금요일에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비행기표를 바꾸고 화요일까지 있어야 될 상황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토요일까지 온 가족이 하루를 보냈다.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입맛도 없고, 지친 하루가 되었다. 토요일 아침에 공항에 다시 찾아가, 수수료를 지불하고 신체검사 서류를 받았다. 문제는 우리가 직접 서류를 대사관으로 가지고 가면 안 된다. 그래서 다시 DHL회사를 찾아가 서류를 배달해달라고 부탁했다.
화요일, 예정된 시간에 불안한 마음으로 대사관에 갔다. 다행이 서류도 도착했고, 우리는 비자를 받았다. 너무 지쳐서 비자를 받은 기쁨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해결되자, 집에만 가고 싶었다. 그런데 동남아시안 게임 때문에 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도중에 가방도 공항에서 잊어버렸다가 다시 찾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자동차를 빌려 이틀 후 집에 도착했다.
바다건너, 산 너머 영주권을 받아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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