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꿈을 주는 선생님

2006-09-0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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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옥<피아니스트>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이사를 해서 전학을 온 나는 친구도 쉽게 사귀지 못해 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시간이 있었으니 기악합주 시간이었다. 특별활동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담당 선생님이 마침 우리 오빠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키가 작고 눈이 많이 나빠서 두꺼운 안경을 끼신 선생님 이셨는데 이 분은 큰북, 작은북, 심벌즈, 실로폰, 아코디언, 어떤 악기든지 못하는 것이 없으셨다. 그 당시 교실엔 올겐이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피아노 치는 것을 알게 되신 선생님은 내게 올겐을 치게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실수도 많았으련만 선생님은 한번도 못한다고 하신 적이 없다. 당시 학생들은 악기를 따로 배울만큼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못해 수업시간에 배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선생님이 만족할 만큼 잘하지 못한 것이 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선생님도 야단을 치실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열심히 하지 않을 때였다. 당시 초등학교별 합주대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못하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우리 잘못이라는 것이다. 뭐든 최선을 다한 후 결과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거나 불성실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이 되든 큰 방해가 된다시며 호통을 치곤하셨다. 그 결과 우린 2등을 했고 1등을 못해 아쉬워하던 우리들에게 열심히 했으니 잘한거라며 짜장면을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는 내게도 넌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시던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후 그만둔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힘든 상황이 올 때, 낙심되는 일이 있을 때면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힘을 내곤했다.

그렇게 아련한 기억 속에 계시던 선생님의 소식을 첫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어느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계신다는 것이다. 나는 그리워하던 선생님을 찾아뵈었고 선생님은 당시 내가 입고 다니던 빨간 코트까지 기억하고 계셨고 꿈을 이룰 줄 알았다며 대견해 하셨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지만 그날 나는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아이로 돌아가 선생님이 칭찬해 주신 것을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나는 언제부터인지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고 그렇게 좋아하던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으니 소원을 이룬 셈이다. 아이들이 충분히 연습하지 않아 때로 속이 상할 때면 가끔 선생님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를 되돌아본다. 나도 그렇게 꿈을 심어주는 선생님인가 하고. 사랑하는 음악과 함께하는 삶이 즐겁고 예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날마다 자라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부족한 내게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항상 감사한다. 앞으로도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가르치며 꿈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사랑한다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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