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산악회 원정대
백정현(등반대장) 이준해(존)
이만우(피터) 최선영(브라이언)
유재일(에드워드·필자·사진)
미풍도 없이 적막감만 흘러
14.000피트 지점에 식량 데포
베이스캠프 고소증 시달려
데날리 시티는 인종전시장
Day 5 2006년 5월30일
오늘은 햇빛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하늘은 눈이라도 올 듯이 잔뜩 흐려 있었으나 우리는 개의치 않고 C2에서 10시에 출발한다.
시작부터 ‘Ski Hill’의 오르막이다. 계속되는 오르막 언덕으로 가도가도 평지가 나오지 않는다. 양옆의 산들을 보면 이 곳은 왕성한 빙하의 운동을 감시할 수가 있는 곳으로 우리가 지나고 있는 곳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크레바스와 빙탑이 도처에 산재해 있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차갑고 희박한 공기를 마시며 햇빛이 없는 회색빛 어둠의 그늘을 즐기며 차근차근 고도를 높여 가파른 모터사이클 힐 아래에 자리 잡은 제3 캠프에 정오에 도착한다. 이 곳은 이미 많은 팀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쳐진 아늑한 곳이다.
가벼운 진눈깨비가 내린다. 모두들 우모복과 고어택스 재킷을 입고 눈을 맞으며 서둘러서 이 곳에 텐트 세 동을 친다. 브라이언은 집은 뷰(view)가 좋아야 한다며 눈으로 쌓아올린 블럭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이 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어서 한결 답답함을 덜어주었다.
Day 6 2006년 5월31일
밤새도록 눈이 왔나보다. 아침에 오전 8시에 일어나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현상에 빠져 장님이 된다. 오늘은 푹 쉬자며 아침을 먹고는 모두들 슬리핑 백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졸다 깨었다를 반복하며 쉬고 있는데 준해 형이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소리에 모두들 벌떡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가니(17:52) 얼굴이 까맣게 탄(아프리카 사람 같았음) 일행 세 명이 눈보라 속을 헤치며 하산을 하고 있었다. 늘 거센 바람이 분다는 유명한 윈디 코너를 거쳐서 악명높은 모터사이클 힐을 지나 하산을 하고 있는 한국에 서온 열린 산악회 회원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한치 앞을 가늠 할 수 없는 화이트아웃과 체력소모로 정상 바로 밑 6,100m 지점까지 올라 갖다가 산행을 포기했다며 못내 아쉬운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하니 시간이 없다면서 간단한 간식이라도 달랜다.
Day 7 2006년 6월 1일
밤새도록 불었던 거센 바람 소리에 잠을 설치다 갑자기 잠잠해서 오전 6시에 나가보니 흰 산봉우리가 잿빛 구름 속을 뚫고 나와 환한 햇빛 조명을 받고 있었다. 밤새도록 많은 눈이 내려있어서 모두들 누가 먼저 저 눈길을 뚫고 악명 높은 모터사이클 힐로 올라가려나, 서로들 눈치를 보고 있다.
오늘은 모터사이클 힐을 거쳐서 윈디 패스를 지나 해발 14,000피트 지점에 식량을 데포 시키고 내려오는 날이다. 우리 일행도 데포 시킬 짐들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이곳에서 먹을 2~3일분의 식량만 남기고는 모두 카고백에 담아서 썰매와 배낭에 넣는다.
오전 9시,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 설사면의 눈을 헤치며 오른다. 힘들게 모터사이클 힐에 올라서니(10:18) 해가 보이기 시작하며, 경사가 더 심한 설 사면이 나온다.
라스트신이 좋은 영화처럼 여운이 있고, 감동이 있는 멋진 원정 등반이 되기를 기원하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11:39). 평편한 곳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윈디 패스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고갯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뒤쳐져 있는 일행들을 기다린다. 앞에는 윈디 패스로 오르는 사람들이 줄지어서 하얀 풍경 속으로 사라진다. 크레바스와 낙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윈디 코너의 오른쪽 설 사면을 따라 운행하다가 눈사태를 만났지만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곳 10m 전방에 멈추어서 다행이다.
바람 거세기로 악명이 높다는 윈디 패스에 도착했지만(13:35) 미풍조차도 없이 완벽한 오후의 햇살만이 우리의 앞길을 재촉하고 있다. 크고 작은 크레바스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윈디 패스의 확트인 조망은 우리의 가슴을 뻥 뚫어 버릴 것 같다. 구름 속을 뚫고 우뚝 솟아 나있는 헌터 봉과 포레이커 봉이 보이는 이곳은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할만큼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곳이다. 알 수 없는 힘이 이곳에서 솟아나고 있다. 인간의 표현과 논리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무엇이라면 아마도 신의 영역이리라.
신성한 산을 순수한 마음으로 오른다. 나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꺼다. 윈디 코너를 돌아서 오늘 우리가 식량을 데포(등반시 장비나 식량 등을 보관하는 것)시킬 14.000피트 지점에 도착했다(14:37). 뒤쳐진 일행들을 가다렸다가 데날리 시티로 향한다. 오늘부터 고소 증세가 나타 날것을 염려 아침부터 얼굴을 전부 감싸고 눈만 나오는 바라클라바를 쓰고 올라 갖으나 고소 증세가 나타나는지 배가 살살 아프며 너무나 힘이 든다.
앞서간 이들은 보이지 않고 뒤쳐진 일행도 보이지 않는다. 거의 다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한계가 오는지 코가 땅에 닿을 것만 같고 허리가 자꾸만 숙여 진다. 베이스캠프가 가까워질수록 기온도 떨어지고 구름도 몰려온다. 두꺼운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끝이 얼얼해지고 발끝도 감각이 둔해 지는 걸 느낀다. 땀으로 흠뻑 젖은 재킷은 바람으로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 같다.
내 몸의 열기도, 땀도 사라지고 시원함을 떠나 온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한참을 힘겹게 오르지만 빤히 보이는 베이스캠프는 다가오질 않는다. 정말 어렵고 힘들게 데날리 시티에 입성(17:15)했다.
데날리 시티에서 바라본 주변은 앞으로 헤드 월의 깎아지른 설 벽과, 오른쪽의 웨스트 립, 이것을 이어주는 웨스트버트레스의 리지 능선이 있고, 뒤쪽으로 레인저 텐트와 메디컬 텐트, 왼쪽의 헌터 봉, 오른쪽 포레이커 봉이 버티고 서 있으며 그 앞에 지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화장실 두 개가 구름바다의 봉우리를 마주보고 있다.
데날리 시티에는 수십 동의 텐트가 쳐 있고 각국의 젊은 남녀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듯 웃고 있다. 이곳은 세계 각국의 산악인들이 모인 인종 시장이다. 오늘 정상 등정을 했다는 한국 팀을 비롯하여, (경기 연맹 1명, 바위 산악회 2명이 이날 정상 등정을 했다고 함) 캐나다, 체코, 필리핀, 일본, 타이완, 스페인, 스위스, 독일 팀 등. 무엇이 이들을 이산에 모이게 하여 이 희박한 공기를 마시며 시장판을 이루는 것일까?
캠프사이트에 짐들을 데포하고 두동의 자일로 안자일렌을 하고 C 3(모터사이클)로 하산을 시작한다(18:04) 하산을 하면서도 내일 이곳으로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다. 썰매를 끌며 내리막 설 사면으로 내려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내가 생각한 대로 가주질 않고, 크레바스가 있는 계곡 쪽으로 쏠리며 자꾸만 넘어지는 썰매에
모두들 화가 나고, 서로가 짜증도 나고 힘도 들었지만 결국은 오후 늦게 모터사이클 캠프에 도
착(21:12)하였다.
아프리카 사람처럼 얼굴이 까맣게 탄 한국 열린 산악회 회원들.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매킨리 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