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온 몸으로 퍼져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정리할 겸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려고 산 책을 읽었다. 웃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가에 대한 책이었다. 결국은 그 책을 무엇에 홀린 듯이 전부 읽었다. 그리고는 멍청한 사람처럼 웃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입으로만 웃었다. 연습이기도 했지만 사실 즐거운 일이 없는 탓이었다. 이런 행위를 하는 자신이 싱겁다 싶었지만 그래도 웃는 연습을 계속 했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이 그 사람을 보고 적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금방 죽을 듯한 얼굴이었는데 화색을 찾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때문이다.
나야말로 웃음이 어느 순간 떠나가서 석고상의 모습으로 지냈다. 아주 극한 상황에 놓여지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이 슬픈 기색을 띄고 지내는 것이 싫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결국은 통곡하며 삶을 마쳐야할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자신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좋지 않은 자신의 삶과는 맞서서 싸울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기, 다른 말로 표현하여 끊임없는 노력으로 말이다.
요사이 나는 세상말로 나사 풀려진 무엇처럼 실없이 잘 웃는다. 아니 실없이 웃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마음이 동해서이다.
다람쥐가 새 모이통을 습격한다. 원숭이 못지 않은 재주를 부려서 새 모이통으로 침입에 성공한다. 성공하기까지의 행동을 보노라면 비디오 필름이 슬로우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예쁜 새가 잔디에 앉아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침울하게 지내지 않고 웃음으로 순간을 이어가니까 어그러진 내 육신이 제자리 찾기에 더불어 애쓰는 듯 하다.
지금까지 나는 겁이 필요이상 많았었다. 실없이도 웃고, 별로 웃기지 않는 일에도 웃고, 웃고, 웃고 하다보니 굳은 내 몸이 윤활유를 친 것처럼 부드러워짐이 느껴졌다. 물론 지금 현재의 내 형편은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는 것은 아니다. 근래 언제부턴가 엔돌핀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어차피 사람들의 관심은 건강해 생명을 더 오래 지키는 것이니까.
‘소문만복래’의 말 뜻으로 하자면 웃으면 복이 온단다. 넓게 복을 해석하자면 물질, 건강, 학업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 요즘 내 삶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궁핍한 지경이다. 그런데도 나는 희희낙락, 즐거움을 향유하고 있다. 굳었던 내 육신이 풀리면서 내게 닥칠 모든 일을 해결해줄 것 같은 -아자작-의 기분을 전해주니까.
과연 어느 신이 만면에 미소를 담고 지내는 내게 독기를 부릴거나?
김부순 <버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