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아! 광복의…

2006-08-0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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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미연<주부>


주름진 얼굴에 다 하시지 못한 이야기 남기시며 돌아 앉으시는 아버님을 바라보면서 8. 15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그때 말이여, 온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깊이 숨겨 놓았던 태극기 손에 손에 들고 감격의 만세를 불렀지!“일제36년”해도 해도 너무 했단다. 평화롭기만한 우리 나라에 총과 칼을 앞세워 삼천리 강산을 피로 물들이고 우리의 얼과 혼이 되살아 나지 못하도록 조선의 맥이 흐르는 곳곳(인왕산, 삼각산, 인수봉 등등….)에 철핀(징)을 박고 중앙청이란 이름하에 서울의 심장부에 일본식건물을 한일자로 설계하여 영원히 지배 하려했던 그들은 그것도 모자라 창씨 개명이라 하여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탄압속에 곤욕을 치루는것은 물론 사회생활 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인간으로서의 기본권 마저 박탈당하는 시점에서 자식들과 살아남기 위해 이름조차 잊어 버렸어
내이름? 감골이 고향이니 감(시), 마을(촌), 을 써서 가끼무라 였는데 형제지간 에도 성이 틀려 삼촌, 외삼촌, 가까운 족보조차 상면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 였으니까 어떤이들은 아버지는 밭근처에 산다하여 밭(전)자로 성을 짓고 아들은 산에 산다하여 묏(산)으로 성을지어 부자간에 성이 틀리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많았지 흔적조차 찾을수 없는 족보조차 말살을 하였단다
충청도 어느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어린아이들을 모두 데려가 병막이라는 곳에 가두고 음식은 커녕 약조차 제데로 먹지 못한 상태에서 사라져간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였고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들은 생사조차 확인할수가 없었어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중학생 이상은 전쟁터에 착출되기 시작할 무렵 젊은이들은 나무열매로 연명하며 이산저산으로 숨어있게 되었지 왜?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조차 영문도 모르는채 전쟁터의 이슬로 살아져 간 선조, 누가 무엇으로 보상할것 인가?
치욕적인 굴종만 강요당하며 불안과 굶주림 속에서 모든것을 송두리채 빼앗았던 그때…..!
그들은 양심적 윤리조차 없었단 말인가? 식민지 치하에서 참으로 암울한 그 시절 일제의 계속되는 질곡 속에서 살아 숨쉰다는 자체가 고통 스러운 삶 이었으리라 강렬한 태양은 8월 하늘에 바람처럼 햇살처럼 스쳐 지나간 뼈속 마디마디 불운의 역사 깊고 험한 역사의 종착력 8월 15일. 아! 광복의 기쁨이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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