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치대는 아이들

2006-07-1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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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정<한국학교 교사>

우리집 둘째는 어릴적 유난히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였다. 별명이 껌 또는 인절미였으니 대충 짐작이 가지 않는가. 그런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처음 학교라는 곳에 간 날을 아마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강력 접착제로 붙여 놓은 듯 필사적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선생님에게 떠다밀 듯 안겨주고 나와서는 한동안 숨어서 지켜보았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향한 눈길을 거둔 사이 뭔 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아이는 파랗게 질릴 때까지 울어재치다 급기야 안고 있던 선생님 상의에 오줌범벅을 만들어 놓았다. 그 후 꼬박 한달동안 녀석은 아침마다 유치원행을 거부했고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곤했다. 그 아이때문에 늘 노심초사하는 나를 보며 주위분들은 꽤나 유난을 떤다고 종종 핀잔을 주셨다. 아이가 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에미가 안 놓아주는 거라고. 에미가 너무 끼고만 있어 그런거라고 말이다. 유난이라면 유난일 수도 있겠으나 안 떨어지는 아이를 구지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게 학교가기 전의 아이를 끼고만 있던 엄마인 나의 마음이었다. 평생 살아가는데 써먹을 사랑의 밑천이 그 나이 만할 시기에 유난히 기름지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고, 나로서는 다른 밑천 안들이고 그 사랑의 밑천을 톡톡히 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첫날 그 난리뻐꾹을 치던 녀석에게 학생의 면모가 갖춰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의젓해지기까지 했다. 선생님은 그런 그 아이를 젠틀과 참을성이 있다는 등의 표현으로 칭찬하셨는데 그런 그 아이의 면면은 집에서는 도통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 줄만 알고 얼씨구나 얘가 드디어 사람이 되가는구나 좋아라하며 유치원 문을 나오는데, 녀석이 내 옆구리를 꼬잡아 비튼다. 그리고는 오만 트집과 신경질로 치대기 시작하는데 우와, 이건 아주 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엄마를 지 스트레스 해소용 북쯤으로 안다. 한동안을 마구 그렇게 두들겨 대고는 이내 심평이 피는 듯 맹차앙한 얼굴이 되어있는 아이... 헷갈려도 이만저만 헷갈리는게 아니다. 이렇듯 유치원 문을 사이에 두고 둔갑하는 아이를 보며 처음에는 황당해하다가 이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별 수 없는 천방지축이 젠틀하려면, 참을 성이 있으려면, 얼마나 자신을 눌러야 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말이다. 그 누르고 있던 것을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치대며 풀어야 하는데 그 상대가 되어줌이 엄마인 나의 몫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치대며 자라나야 한다.
뒤죽박죽 엉켜진 속의 것들을 치대며 빗질하고 풀어갈 대상이 있어야한다. 내가 이래서 힘들었노라고, 아팠다고, 신경질난다고 와서 괜시리 꼬잡고 비틀고 발로 찰 때 잠자코 슬며시 옆구리를 대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게 쉽지만은 않지만 그렇게 괴롭지만도 않다. 내가 낳았으니, 내 자식이니까 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치대면서 컸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 줌으로 그들이 자라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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