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나는 평범한게 좋다

2006-07-10 (월) 12:00:00
크게 작게
우수정<한국학교 교사>


나는 평범한게 좋다. 평범한 사람도 좋다. 특히나 심성이 평범한 사람이 나는 좋다. 물건도 평범한 건 이내 실증이 나지 않듯이 사람도 있는듯 없는듯 평범한 사람과의 관계는 대개 은은하게 오래 지속된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한마디로 튀지 않아 관심과 눈길이 가지 않는 예사로움에는 그만의 여유가 있다. 평범의 비범함인 것이다.

정작 내가 평범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반대 급부가 크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반대급부란 숨겨진 이면을 뜻한다. 튀어나온 면이 있으면 들어간 부분이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게 자연스런 현상인데 사람 속인들 다를리가 있겠는가. 하긴 여기에도 예외가 있긴하다. 반대급부 없이도 충분히 비범한 사람이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많은 경우 유난히 빛나는 비범함 뒤에 감추인 어둡고 뒤틀린 이면을 종종 보게 된다.

자타가 공인하는 무지하게 착한 여자가 있다. 소위 말하는 천사표 여자다. 평상심을 가진 사람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그녀의 천사표적 행위는 정말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사람들의 칭찬에 한껏 고무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양쪽 어깨 위로 진정 날개라도 나올 듯 싶게 무작정 착해져 버리고 마는 그녀. 이런 그녀로인해 주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무심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그늘져 버리기 십상인데, 심기일전한 그들 가운데 더러는 각고의 노력으로 열심히 황새를 쫓기도 하지만 이내 가랑이가 찢어지는 비운을 맞기도 한다.


착함에 있어 비범한 그녀에겐 주위 사람은 물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면이 도사리고 있다. 심한 질투와 과도한 경쟁심이 그것이다. 어릴적 우글거리는 자매들 사이에서 부모의 사랑을 좀더 획득하기 위해 그녀 나름의 무의식적 삶의 대책으로 택한 것이 착함이었고 질투와 경쟁심이 깊어질수록 착함은 더욱 연마되었다. 어쩌다 꽁꽁 감춰둔 어두운 이면들이 슬쩍 고개를 내밀기라고 할라치면 자칫 착함을 망치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그녀는, 그래서 늘 피곤하다. 그만 착해지고 싶은데도 그간 쌓아온 이미지가 있기에 차마 그럴 수도 없다.

연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부지불식간에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의식 밑바닥의 것들을 노상 틀어막고 단속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지로 부단히 연기하며 그리 길지 않은 인생 그렇게 살아갈 수도 어쩌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막이 내리면 화려한 의상을 벗고 두터운 화장을 지워야 할 때가 오는데 그때가서 자신의 맨 얼굴 앞에 아연실색하면 어쩔것인가 .
있는 그대로의 삶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만의 향기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게 뭔가를 보이고자 아등바등하지도, 속에 감추인 뭔가를 숨기고자 전전긍긍하지도 않는 평범하고 편안한 그들이 그래서 나는 좋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