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떠난자리

2006-07-0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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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정<한국학교 교사>

얼마전 한국학교 동료 선생님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암으로 투병하신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운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그분과 개인적인 친분이 따로 있는건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깔끔하게 정리해 놓으신 교재들을 전수받아 수업준비를 하면서 매주 자연스레 그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분의 유품이 되어버린 그것들이 참으로 내게 소중하게 다가왔다. 하긴 그분이 남긴 귀한 삶의 흔적들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모르긴해도 유형, 무형 그분 삶의 유산들이 또다른 누군가의 삶의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외할머니는 98세에 돌아가셨다. 오래 사신거라면 오래 사신 시간만큼이나 사연이 깃든 물건들이 많을 성도 싶었지만 의외로 할머니가 남기신건 달랑 수의 한벌 뿐이었다. 다른 물건들이 하나도 없었다는건 아니지만, 자손들이 할머니를 추억하며 나눠 가질만한 번듯한 물건들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할머니가 즐겨 쓰시던 장롱 깊숙히에서 나온건 고작 옷 몇가지와 등긁는 막대기, 시척지근한 거즈 에 싸놓은 인절미니 캬라멜이니 하는 음식 나부렁이가 전부였다.
우리는 모두 할머니의 유산(?)을 바라보며 그 초라함에 가슴이 미어옴을, 그 욕심 없으심에 과연 우리 할머니다워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물건에 그토록 애착이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돌아 가신뒤 입으실 수의만은 억척스럽게 호사스러운 것으로 고집하셨다. 다섯 명의 당신 딸들에게 골고루 수의 살 돈을 배분하기까지 하셨고 그렇게 해서 장만한 그 수의는 잠깐씩 할머니가 거처를 옮기실 때 조차도 늘 어김없이 할머니를 따라 다녔다.
그토록 수의를 사수하신 보람은 있으셨다. 염을 마치고 수의로 갈아 입으신 할머니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은 갓 시집온 색시처럼 고와서 아직까지 내 뇌리에 그 고운 모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천국에 가셨고, 말하자면 그 수의는 할머니 나름의 에봇이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그렇게 떠나시고 난 자리는 너무나 깔끔했다.
남겨진 부스러기들이 없어서 청소할 것들이 없었다. 비록 눈에 보이게 남겨진 물건들은 없었지만 할머니가 남기고 간 당신 삶의 궤적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받침목의 구실을 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훗날 나 떠난 자리는 어떠할까...
내가 떠난 뒤 누군가가 나의 서랍을 열었을 때, 나의 컴퓨터를 켰을 때, 나의 장 속 깊숙히 들여다 보았을 때, 그들이 과연 내가 남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산뜻하게 떠나고 싶다.
어차피 가지고 갈 수 없는 찰라의 것들로 영원의 가치를 지닌 것들과 끊임없이 바꾸며 그렇게 살다가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다.
나의 할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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