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흙
2006-06-20 (화) 12:00:00
정현<자영업>
얼마 전에 가깝게 지내던 한 분이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투병 중 본인이 죽으면 화장을 해서 가루를 땅에 뿌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화장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처음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화장터는 침침하고 이상한 냄새도 나며 깨끗하게 정돈된 곳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막노동차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장소는 확 트여서 시원스러워 보이는 공동묘지의 한 쪽에 있었다. 누가 화장터라고 말하기 전에는 유럽풍 지붕의 일반 가정집처럼 보였다.
보통 집의 차고처럼 생긴 곳에 문을 여니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아주 정중하게 맞아 주었다. 마지막 예배를 마치고 관을 용광로에 밀어 넣는데 하나의 티슈박스처럼 간단하게 굴려 넣었다. 통풍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그런지 전혀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커다란 물체가 사라져 버렸다. 물거품 같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천재지변 같다고나 할까. 함께한 일행이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현실을 받아드리느라 꽤 오랜 침묵이 흘렀다. 많이 보아왔던 영화나 드라마의 화면이 바뀌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실화는 역시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얼마나 허상인 것들인가를 실감했다. 아무도 그 자리를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대화를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동상을 입은 사람들처럼 얼마 동안 움직이질 않고 부동자세로 서있는 것이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와 닿았다. 고마웠다. 얼마 후 재를 바닷가 근처의 땅에 뿌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사람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전에 땅에 묻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더욱 그러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흙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을 했다 사실 흙은 우리의 고향이다. 잘 난 사람 못난 사람 구별하지 않고 받아주는 고향인 것이다. 그런 흙에 묻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돌멩이에 맞고 바위에 짓눌려도 신음소리 내지 않는 것이다. 오물이 스며들어 악취가 나도 구역질하지 않는 것이다. 지진 나서 갈라져도 오히려 꼬옥 감싸 앉으려는 것이다. 고갈된 가뭄과 가시덤불 뻗쳐올라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눈보라 시리게 내리고 서릿발 내디딜 때에도 씨앗을 따스하게 품었다가 새 생명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천지가 아름답게 물든 화려한 날 농익은 열매가 주렁 주렁 맺히면
살며시 미소 지으며 침묵으로 박수 쳐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끝난 것이 아니라 흙으로써 영원히 생명을 낳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보다 본분을 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