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 부시 대통령

2006-06-1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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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배우며

▶ 하순득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미국이 고마워 숲 속을 울면서 산책 할 때도 있단다.” “엄마 - 미국이 그렇게 고맙게 여겨지면 고맙다는 편지 한 장내지 그래요.” “어디다?” “이리저리 보내 보지 뭐.” “이리저리라니?” “미국 국회나 백악관이나 우리를 받아준 곳에 아무데나.” “말을 알아야 말을 하제.” “한국말로 쓰세요 우리가 번역할게요.”
퐁당, 내 마음 호수에 돌멩이를 던져 알려왔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가보니
“Jean, 너 백악관에 아는 사람 있나?” “아니, 아는 사람 없다.” “정말 아는 사람 없어? 그런데 와 이런 속달이 왔노?” “무슨 속달?”
직원이 내미는걸 보니 정말 백악관에서 온 속달이다.
“내 이름으로 왔나?” 이름도 정확하다. 순간 미국에서 사는 것이 고마워 몇 군데 감사편지 낸 것이 이제야 답장이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 아파트 생긴 후로 대통령한테서 편지 받은 사람 너뿐이다. 이거 말이야, 예쁜 액자에 넣어 오래오래 간직해서 너의 손자 손녀 대대로 네 후손들에게 보여 줘라. 없애지 말고 잘 간직해라, 귀한 것이다.” 사무실직원들이 흥분해있다. 그 이튿날 대통령한테서 온 편지 좀 보자고 이웃사람들이 내 아파트에 구경하러 왔다.
이 일을 통하여 배운 것이 한가지 있는데 이 사람들이 자기나라 대통령을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고 아끼는지 나 스스로 보았다. 귀한 일이다.
꾸끄렁 꾸끄렁 지랭이 글씨에다 문장마저 제대로 돼 있을 리 없었을 텐데도 답장을 주니 참 고마웠다. 큰 글자로 대통령 사인이 돼 있다.
내 방에 관심이 있고 어쩌다 영어를 해득하는 사람이 보면 “이거 부시 대통령 한테서 온 편지네. 웬 일이야.” 지금도 방벽에 걸려있으나 봐주는 사람 아무도 없다.
아이들에게 신세질 거 없이 서툴어도 내가 한국말로 써놓고 내가 번역했다. 그때는 아직 내게 컴퓨터가 없었다. 현재 부시 대통령의 부친께서 대통령 재임시 1992년 때 일이다.
2006년 4월12일 큰길에서부터 2중 3중으로 대통령 경호원들이 깔렸다. 우리들의 신분증도 철저하게 검증필 된 후 안내를 받아 홀 안에 들어서니 빽빽하게 고요하게 전 세계 열방인으로 붐비는 그 분위기에 내가 벙벙해 버렸다. 오후 1시30분 경에 대통령이 도착한다더니 2시가 넘어서야 어떤 여자 한사람을 앞세우고 옆문에서 대통령이 들어왔다. 새벽 이슬같이 반짝이는 청년들, 믿음직하고 싱싱한 젊은이들이 자기 대통령 보호하겠다고 군데군데 잘 박힌 못같이 질서를 잡아 주고 그 눈동자는 번개라도 잡아 낼 거 같이 더욱 반짝인다. 내 앞에서 우리를 똑바로 보고 서있는 경호원에게, “헬로우 서-, 대통령하고 악수할 기회를 주세요. 나 대통령하고 악수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경호원이 빙그fp 웃는다. “꼭 기회를 주세요, Please.” 재차 나팔을 불자, “내 맘대로 못해요”하며 내 등뒤 저 먼데로 눈을 돌려버린다.
새로 제정된 메디케이드를 위한 대통령의 설명이 끝나고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과 악수하며 돌아가는데 나와는 반대쪽으로 저 멀리 가버린다. 실망으로 마음이 탔는데, 진기하게도 저쪽으로 가버리든 대통령이 나 있는 쪽으로 돌아온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손은 잡지 않고 대통령을 껴안았다.
“President bush, I love you. I pray for you every morning.”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이 “Thank you. I love you too.”하며 나를 쳐다보자 누군가가 대통령을 내게서 잡아채 가버렸다. 내 앞에 서 있던 멋들어지고 걸출한 경호원이 내 청을 받아들여 한번 기회를 준 것이다.
역사에 없는 테러 비상시를 당한 미국에 꼭 필요한 대통령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총칼세력에 생명을 잃고 짓밟히고 있는 약자의 편이 되어 굳은 의지로 자유를 위해 싸우고있다. 자기 희생과 최선을 다하고있다.
부시 대통령을 존경하며 그를 위해 새벽마다 기도 드리고 있다.
하순득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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