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2006-06-1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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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자영업>

많이 들어 왔듯
당신과 함께한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칠흙처럼 검던 당신과 나의 머리엔
회색 하이라이트가 더 짙어지고 있네요.

신선 노름하는 사람이야
도끼자루가 썩는 줄 모르고 시간을 흘려 보낸다고 하는데
당신과 나의 삶은
오히려 서로 깎이고 다듬어지는 아픔이
삶의 구석 구석에서 사금파리처럼 번쩍거리기도 하지요.


이제는
느낌만으로도 서로를 읽을 수 있게 한 그 아픔들이
가랑잎 냄새 나는 morning coffee 한 잔을
함께 나눌 아침을 이야기하며
늦은 밤 good night라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도 하지요

지금은 빈도수가 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나의 불평과 투정으로 공중 곡예사처럼 생의 줄을 타온
당신의 이력서는
어디를 내 밀어도 뒤지지 않을 거에요.

자식들 가리키느라 허리띠 졸라매며
지문이 지워지도록 같은 일을 하고
볼트보다 더 단단한 나의 잔소리로 조인
등뼈 마디 마디에서 진액을 다 빼어내니
좋아하던 취미 생활할 여력이 없어진 당신!
찬비 맞은 병아리처럼 두 어깨가 내려앉고
막 달 임산부의 걸음걸이로 퇴근해와
등만 닿으면 코를 고를 때마다 인생의 멋을 모른다고
먹다가 남아서 차가워진 피자조각 같은 취급을 한 것이
안쓰러워 목젖이 뜨끔거리네요.

비록 좋은 말의 표현이 무뎌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임을 되뇝니다
더하지도 감하지도 않은 당신 그대로
나는 당신이 있어서 좋아요.
당신도 내가 있어서 힘이 되면 좋겠어요.
당신의 눈동자에 맺힌 이슬 닦아 드릴께요


아침이슬

일일이 말할 수 없는 사연
홀로 끌어 앉고
차마
내 앞에서
흘리지 못하는 내님의 눈물인가

다들 잠들어 있는
새벽 미명에
굵게 굵게
고여 있다가
아침 햇살에 들킬세라
슬쩍 닦아버리네
자국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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